[역경의 열매] 송경용 (28·끝) 한 코가 소중한 그물 같은 사회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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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6:1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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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집처럼 내내 그리워하던 풍경과 달리 여기저기 아파트들이 불쑥불쑥, 무심한 듯이 솟은 모습 때문이다. 봉천동 구석구석 서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콘크리트 속에 묻힌 것만 같았다.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철거 용역 깡패들에게 얻어맞고 떠밀리고 쫓겨나면서도 삶의 터전을 지키려 고군분투했던 그들이 떠올랐다. 그렇게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면 모르겠으나, 두서없이 높기만 한 아파트들 사이에서 ‘동네’ ‘마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 사람들 대부분은 떠나고 없었다. 서울 외곽 또는 수도권 변두리로, 더 싼 지하 셋방이나 연립주택, 그나마 나은 경우 임대아파트로 흩어진 뒤였다. ‘주거’가 상품이 되고 투기 대상이 되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 욕망이 부풀려지는 사회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었다. 그래도 ‘나눔의 집’을 모태로 한 일들은 활기차게 진행 중이었고 내가 없는 사이 더 전문화돼 있었다. 나는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이사장직을 맡았다. 노숙인 및 위기가정 쉼터와 임시주택 운영, 주거 및 재개발 상담 등 ‘주거 복지’와 관련된 일들을 전문화시켜 하고 있는 단체다. 1990년대 ‘나레건설’의 경험이 반영된 사회적 기업 ‘나눔 하우징’도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요즘 전념하는 일은 ‘위대한 유산 남기기 운동 100인 이사회’ 모집이다. ‘나중에’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부터’ ‘미리’ 조금씩 유산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물려주고 나눠줄 아름답고 위대한 100명의 사람들을 찾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린다(02-928-9064). 사제로서는 ‘걷는 교회’(walkingchurch.net)를 시작해 지난해 초부터 이끌고 있다. 매 주일 서울 또는 근교의 8∼10㎞를 함께 걸은 뒤 야외의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길, 또는 어려운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주로 걷는다. 또 내가 늘 마음에 빚을 품고 있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헌신하는 전국 활동가들을 위한 공제회,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전세자금 대출, 교육자금 지원 등을 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어디서 무얼 하든 ‘나눔’이라는 말의 책임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1986년 상계동 ‘나눔의 집’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귀에 설었던 이 단어가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유행어처럼 쓰인다. 초기 주창자로서 우려되는 것은 ‘나눔’이 돈 걷고, 자원봉사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나는 ‘나눔’이 사회 작동의 원리가 되기를 바란다. ‘네트워크’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네트워킹은 풀이하면 ‘그물이 일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하나님 앞에 동등한 것이다. ‘나보다 못 해서,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니라 그물 한 코 한 코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코도 없이, 서로 동등하게 엮인 그물이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가 되는 것, 내가 생각한 나눔은 이런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먼 길이지만 든든한 동료들이 있기에 즐겁게 걸어갈 자신이 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