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경용 (25) 계속된 강행군에 몸 곳곳에 이상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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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6:1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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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년 어느 날, 회의장을 나서는데 순간 앞이 안 보였다. 동료 신부가 나를 얼른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가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하기에 “신부입니다” 하자 “하나님이 살리셨네요” 했다. 뇌압이 빵빵하게 차올라서 혈관 어느 한군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딱 1주일을 쉬었다. 얼마 뒤에는 새벽 조찬모임에 가려고 세수를 하는데 오른쪽 눈두덩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전날 저녁 서울역에 나가 있다가 새벽 2시 집에 들어와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난 참이었다. 찬물 찜질을 해도 가라앉지 않았다. 동네 의원에서 처방 받은 항생제를 1주일간 먹어 봐도 그대로였다. 하는 수 없이 삼성의료원에 가 보니 바이러스가 뼈 안으로 침투해 시신경이 감염됐다는 것이다. “이틀만 늦게 오셨어도 실명할 뻔하셨네요.” 그렇게 해서 수술을 받았지만 오른 눈 주위는 지금도 좀 부어 있다. 이후 병원에 갈 때마다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말을 듣게 되자 스스로도 건강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영국 CMS(Church Mission Society)라는 선교기관의 초청을 받았다. 영국 버밍엄의 크라우더 홀 칼리지에서 연수 받을 기회였다. 그때 내가 직접 맡았거나 이름을 걸어 놓은 직책이, 비슷한 것은 대충 합쳐도 23개나 됐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한발 물러서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2000년 9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버밍엄에서 40여개국 출신 친구들과 생활하게 됐다. 처음에는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말도 안 통해 괜히 왔나보다 후회가 됐다. 중학생 시절 서울에 왔을 때 느낀 ‘이방인’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직자들이 떠올라 뭉클해지기도 했다. 서서히 적응이 되자 건강도 조금씩 좋아졌다. 기숙사 친구들과 친해져서 함께 각국 음식을 해서 나눠 먹고, 각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토속 악기를 연주하며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중에서 내게 큰 깨달음을 준 이가 우간다에서 온 헬렌 신부다. 나이는 30대 중반에 육상선수처럼 깡마른 여성인데 툭하면 내 방 바로 옆 전화기를 붙들고 바닥에 주저앉아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울다 웃다 하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주말마다 여러 교회를 다니며 모금을 했는데 “교회와 집을 짓기 위해서”라고 했다. ‘교회는 그렇다 치고 왜 자기 집을 짓는데 모금을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다 방을 들여다보면 옷가지, 상자 등이 정신없이 잔뜩 쌓여 있어 ‘정신이 온전치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갑자기 동물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가만히 들으니 헬렌이 통화하는 소리였다. 성질이 폭발해 문을 열고 나가 뭐라고 하려다 보니 표정이 이상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은 텅 빈 것처럼 공허했던 것이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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