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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송경용 (24) 현장 경험 살려 ‘실직노숙자 대책’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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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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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송경용 (24) 현장 경험 살려 ‘실직노숙자 대책’ 도와

1041.jpg IMF 구제금융 사태는 나를 이른바 ‘중앙 무대’로 나가도록 했다. 그때까지는 산동네에서 철거민, 노동자, 청소년, 노인, 장애인, 실업자, 장기수 선생들과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각종 단체나 기관, 조직 등의 초청을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하곤 했다. 

1998년 초 복지부에서 전화가 걸려 오자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내신 고 최선정 전 복지부장관이 당시 차관이셨는데 노숙자 대책 담당 국장에게 “송 신부랑 상의해서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달려가 보니 백지 한 장 꺼내 놓고 있었다. 당장 밥을 누가 해서 어떻게 나눠줄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예산이 얼마냐고 물으니 20억이라고 했다. “아이고, 지금 땜질식 처방 만들자는 겁니까? 200억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 상황이 경제위기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앞으로 고용과 금융, 주거의 불안정성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응급대책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민간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않으면 안 되므로 종교·복지·시민단체들과의 협력 체계를 만들자고 했다.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사역을 통한 경험도 있지만 97년 중반 미국 뉴욕 할렘가에서 정부와 교회, 시민단체들이 노숙자 문제에 협력하고 있는 현장을 보고 온 영향이 컸다. 어떻게 그리 딱 맞는 시기에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인지, 나를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꽤 오랜 토론과 노력 끝에 예산이 200억원으로 늘었고 대책기구 이름은 ‘실직노숙자 대책위원회’로 정해졌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실직노숙자 대책 종교시민단체협의회’도 조직됐다. 이를 중심으로 전국에 대책반이 만들어져 응급 급식 사업을 했고 상담소, 중장기 쉼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뜻 깊은 단체가 ‘한국 종교계 사회복지 대표자 협의회’다. 기독교계에서는 대한성공회를 비롯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구세군대한본영 등이 참여했고 이후에도 여러 교단이 합류했다. 

이후로도 실업극복 국민운동, 공동모금회법 제정운동, 푸드뱅크 확산 및 전국협의회 조직, 각종 사회복지단체와 재단 설립 및 참여로 눈코 뜰 새 없이 밀려 다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98년부터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 활동이다. 시혜의 대상으로 보던 생활보호대상자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권리를 가진 수급권자로 대우하고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법률 제정 운동이었다. 노동·시민·여성·지역 단체 대표들, 학계, 정·관계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 지금보다도 “복지보다 경제발전이 우선”이라는 논리가 강했기 때문이다. 

1999년 드디어 이 법이 제정되고 2000년 시행되었을 때, 나는 그동안 만난 수많은 가난한 이들을 떠올렸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사람들, 그럼에도 ‘생활보호대상자’라는 낙인 아래, 또는 그조차 얻지 못해 스스로를 부끄럽게, 쓸모없게 느껴야 했던 그들이 눈앞을 스쳤다. 

보람도 크고 재미도 있는 일들이었지만 지나치게 바쁜 일정이 누적되자 결국은 몸에 병이 왔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