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경용 (23) ‘전태일 평전’이 사역의 길 동기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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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6:09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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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상계동 야학 교사 시절에는 길을 걷는데 책이 바닥에 떨어져 펄럭이고 있었다. 주워 보니 ‘전태일 평전’이었다. 그날 밤을 새워서 읽으며 만난 ‘인간 전태일’, 특히 그가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삼각산 기도원에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내 신앙관을 또렷이 해 줬고, 내 사역의 방향을 정해주었다. 그 못지않게 희한한 일이 97년 보름 동안 미국을 여행한 일이다. 성공회 뉴욕교구의 마이클 캔달 신부가 나를 초청했는데 뉴욕 60개 교회와 기관이 할렘가에서 진행 중인 선교와 복지 사역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복지부 박수창 과장과 함께 가서 교회가 홈리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사례, 저소득층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 등을 두루 살펴봤다. “여기까지 왔으니 캐나다도 가보라”는 제안에 즉흥적으로 토론토에 갔다가 마침 일정이 맞아 ‘유나이티드 웨이’라는 이름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들러 자세한 설명을 듣고 왔다. 가는 곳마다 감탄이 나오긴 했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당시 내가 한국에서 진행하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역들에 비해 대상자의 범위가 넓었고, 정부와의 공조, 법적 근거 마련 등이 필요해 멀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해 말, ‘IMF 사태’가 터졌다. 97년 초부터 나는 심상찮은 징조를 느끼고 있었다. 4월부터 노동일을 하는 이웃들이 “일감이 통 없다”고 했다. 9월쯤 되자 일을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지금도 경제 관료의 말이나 경제 전문기관이라는 곳의 발표를 잘 믿지 않는다. 그해 유달리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 ‘경제지표 호전 기미가 보인다’ 등 발표가 많았던 것이다. 11월이 되자 충격이 사회 전체에 ‘뻥’ 터졌다.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전과는 다른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서울 봉천동의 한 아주머니가 남편이 며칠째 안 들어온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TV 뉴스를 보니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이 넘쳐난다고 했다. 딱 감이 오기에 바로 나가서 뒤지고 다녀 겨우 그 집 아저씨를 찾아냈다. 그를 설득해서 집으로 데려 가기로 하고 문득 둘러보니 노숙자가 1000명도 넘어 보였다. 아찔한 광경이었다.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바로 2박3일 동안 신문지를 덮고 자면서 사람들에게 왜 여기까지 나오게 됐는지를 묻고 다녔다. 그리고 잠깐 집에 들어오니 복지부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당장 들어와 달라는 것이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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