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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송경용 (22) ‘노동자협동조합’ 새로운 도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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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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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송경용 (22) ‘노동자협동조합’ 새로운 도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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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시던 건설 노동자 20∼30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준 덕분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는 그분들을 보며 품어왔던 아이디어를 어느 날 꺼냈다.
“외국에는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시도한 사례가 있고요. 우리도 같이 해봅시다!”
노동자들이 주주로서 실질적 주인이 되는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자료와 사례를 보여드리며 설명하자 모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맺혔던 ‘하층 노동자로서의 서러움’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60대 중반에 미장 뒷일꾼 일을 하셨던 ‘최씨’ 아저씨는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토로하셨다. “아니, 동방예의지국이라면서, 육십 넘은 사람보고 ‘어이, 최씨!’ 이래도 되는 거여? 갓 서른 넘은 기술자들까지 말이여!”
이렇게 기획된 ‘나섬건설’은 빈민 운동의 대부 허병섭 목사님이 세우신 ‘두레건설’과 합쳐 ‘나레건설’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허 목사님이 회장, 내가 대표를 맡았다.
문제는 당시 협동조합법이 없어 상법상 주식회사로 등록해야 하는데 자본금 5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봉천동 한 은행 지점에 사제복을 입고, 당시 중앙일간지부터 여성지까지 숱하게 보도됐던 우리 협동조합에 대한 기사 중 몇 개를 스크랩해 가져갔다.
대출 조회 결과는 당연히 “안 되겠는데요”였다. 지점장을 만나겠다며 두 시간 반을 버텼다. 그제야 나와 “차나 한 잔 하고 가시지요” 하는 지점장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그분은 회사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5000만원을 넣고 보여주셨다. “통장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잔고증명을 떼어 드릴 테니 시작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마웠는지. 후에 정말 실무자 급여통장부터 모든 금융 거래를 이 지점에서 했지만 그 고마움을 다 갚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30여명의 노동자가 주인인 ‘나레건설’이 창립됐다. 밑에서부터 따져서 잡부, 뒷일꾼(데모도), 미숙련기능공, 숙련기능공, 감독(오야지·십장)까지를 묶어서 한 현장에 보내는 회사였다. 노동자들은 ‘내 일의 주인은 나’라는 책임의식으로 정성들여 일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 능력의 부재였다. 건설업 특유의 공정과 현금 흐름을 맞추지 못해 일은 일대로 하고 적자를 보기 일쑤였다. 한번은 우리 노동자가 돈을 받아야 할 곳에 거꾸로 돈을 주겠다는 어음을 써 줘서 재판까지 갔다. 상대는 기독교인에 사회적 엘리트였는데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았다. 내가 찾아가 무릎 꿇고 사정해서야 겨우 일부만 나눠 갚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1997년까지 만 5년여간의 실험은 2억여원의 빚만 남긴 채 종료됐다. 그러나 그 의미는 충분했다. 노동에 있어 주인의식의 중요성, 빈곤 탈출을 위한 지속가능한 사업의 필요성을 알려 줬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가 건설과 인테리어 사업 분야에서 운영 중인 사회적 기업의 모태가 된 셈이다. 그 얼마 후, ‘IMF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내가 어느 정도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경험 덕분이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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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