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경용 (17) 10년 만에 세상을 본 뇌성마비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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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6:0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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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7∼8m 나오는데 10년이 걸렸구나!” 진현이가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 나눔의 집 간사들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온 날 우리 심정은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참으로 복잡했다. 진현이는 나눔의 집 바로 건너편 다세대주택 지하 셋방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7년째 병석에 있었고, 어머니는 배에 복수가 차오른 상태로 생계를 꾸렸다. 뇌성마비 진현이가 아버지 병수발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몇 계단만 나가면 밖인데도 진현이는 10년간 문 밖 출입을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세월을 살았을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만은 틀림없다. 밖에 나온 뒤로 한동안 진현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눔의 집 장애인 작업장에서 생전 처음 일을 하게 되자 나날이 표정이 밝아졌다. 비록 잡지 등을 봉투에 넣어 밀봉하는 단순작업이었지만 진현이는 인간이 기울일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한 달 일하고 받은 첫 월급봉투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아빠한테 갖다드릴 거예요”라고 하던 그 미소. 영원히 잊지 못할 천사의 미소였다. 잊을 수 없는 장애인이 또 한 사람 있다. 그에 앞서 설명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당시 성공회 서울교구 신자들 중에서 나에 대해 비판적인 분이 있었다. “성직자면 교회 개척하고 전도하는 데 주력해야지 왜 그런 일을 하느냐” “빨갱이가 아니냐”고 강경하게 몰아붙이곤 하셨다. 한 번은 나눔의 집까지 오셨기에 나는 일단 동네를 한 바퀴 안내했다. 그리고 한 집으로 모셔갔다. 산동네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판잣집 단칸방이었다. “신부니임, 오셨어요오.” 중증 뇌성마비 여성 정숙이·정아 엄마가 바닥을 기다시피 나오며 인사를 했다. 집 안에는 알코올 중독과 수집벽을 앓는 남편이 주워 온 쓰레기, 폐품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초등학교 1, 2학년 여자 아이 둘이 고개를 내밀었다. 사 들고 간 과자를 아이들은 허겁지겁 먹었다. “그만 갑시다.” 그분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 뒤로 나눔의 집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 다만 그분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정숙이와 정아는 그 동네 또래 아이 누구 못지않게 밝고 행복한 아이들이었다. 턱이 높은 방과 주방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고, 아이들 도움을 받지 않으면 집 앞 가게에도 갈 수 없었지만, 매일 아침 머리를 단정하게 빗겨 주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냈던 엄마의 사랑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중증장애인도 얼마든지 가정을 꾸리고 훌륭한 엄마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배웠다. 한편 나눔의 집의 역사에 함께한 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다. 92년 여름, 날카로운 인상의 두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장기수 두 분의 신변을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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