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송경용 (6) 가난한 곳에 더 절실한 ‘탁아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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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5:5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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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집에 오니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소개했다. 소녀는 너무나 놀랐고 분노했다. 공사장에서 아버지를 밀쳐 죽게 만들었던 바로 그 남자였기 때문이다. 새아버지는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삼남매를 밖으로 내몰았다. 눈 쌓인 마당에서 맨발로 오들오들 떠는 동생들을 보며, 새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멍든 얼굴로 술을 퍼마시던 어머니를 보며 소녀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상계동 적십자 청소년 야학에서 만난 ‘민들레’가 편지로 들려 준 자신의 삶이다. 그제야 그 소녀의 명랑한 웃음 뒤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불안이 숨어 있었던 것을 알았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야학에 나왔고 다행히 친구들과도 화해했다. 그러나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어머니가 취해 있는 날이면 소녀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야학에 동생들을 데려와 맡기고는 조금만 늦어도 반나절치 임금을 깎아버리는 공장을 항해 바삐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민들레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내게 ‘가난’의 실체를 확실하게 알려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난이 사람에게 어떤 모멸감과 좌절을 주는지, 왜 그 굴레를 쉽게 벗을 수 없는지를 말이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몇 년 후인 1986년 상계동 ‘나눔의 집’을 시작할 때, 이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활동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던 때에 민들레는 어린이집, 당시 용어로 탁아소의 필요성을 일깨워 줬다. 그때 민들레는 이미 두 아이를 둔 엄마였던 것이다. 끝없이 반복될 듯한 가난과 가족의 사슬을 벗는 길로 그는 열여덟 나이에 결혼을 택했던 것이다. 동네 ‘잘 생긴 오빠’와 단칸방에서 살림을 차려 한동안 재미나게 사는가보다 했는데 3년쯤 후 만나 보니 표정이 완연히 어두워져 있었다. 불성실한 남편 대신 일을 하고 싶어도 두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민들레를 위해,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위해 상계동 나눔의 집이 탁아소를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보란 듯이 예전의 전투력을 되찾아 두 아이의 당당한 어머니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일어섰다. 수년 전 다시 만났을 때 민들레는 한결 환한 모습으로 두 아이가 얼마나 공부를 잘 했고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들려줬다. 그 밖에도 야학에서 만난 학생들, 복잡한 사연들로 툭하면 가출하는 바람에 교사들이 산으로 다방으로 찾으러 다녀야 했던 소녀들, 걸핏하면 술 마시고 쳐들어와 욕설을 퍼부었지만 자기 이름이 적힌 야학 출석부를 몰래 가져가 소중히 간직했던 소년, 그렇게도 속을 썩이더니 나중에 자리 잡고 상계동으로 돌아와 지금은 나눔의 집 봉사를 도맡아 하고 있는 친구…. 이들 모두와 헌신적인 선배, 동료들은 내 삶의 동기가 됐고 목표가 됐다. 또한 나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연세대 건축학과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편입한 것도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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