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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나눔과미래’ 남철관 사회적기업국장 “낮은 이들의 작은 행복 안정된 주거는 조금씩 나눌 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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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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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남철관 사회적기업국장 “낮은 이들의 작은 행복 안정된 주거는 조금씩 나눌 때 가능”

1016.jpg 늦은 저녁 버스에서 내린다. 끄는 듯한 발걸음으로 골목길에 접어든다. 삐걱 하는 경첩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다. 열쇠를 던지듯이 내려놓는다.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하루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집’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다. 이 공간이 있기에 비록 지쳤어도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안정된 주거생활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건 이 기본적의 삶의 조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나눔과미래 남철관(41) 국장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안정된 주거’의 문제와 씨름했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녹번동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건네받은 명함에는 나눔과미래 국장 외에도 두 개의 직함이 더 있었다. 서울형예비사회적기업 나눔하우징 국장과 성북주거복지센터 대표다. ‘나눔’과 ‘주거(하우징)’라는 글자가 도드라진다. 그가 하는 일을 대변하는 단어들이다. 

그의 이력을 설명하려면 대학 사회복지학과 4학년이었던 93년부터 시작하는 편이 쉽다. 지역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고 안산 YMCA 등에서 일했던 그는 대한성공회 송경용 신부가 서울 봉천동에서 운영하던 ‘나눔의집’에 합류했다. 이때도 청소년 쉼터와 장애인 직업자활센터 운영에 참여했지만 98년쯤 본격적으로 ‘주거’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외환위기 때 서울역과 서소문공원 등에 엄청난 수의 노숙인이 있었잖아요. 그중에는 가족 단위가 적지 않았어요.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밖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지요.” 

송 신부와 그는 당장 서울시에 찾아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리고 시의 지원을 받아 본래 고시원 용도였던 관악구의 한 건물을 매입했다. 어른 두 명이 겨우 누울 만한 방이 20개 있는 건물이었다. ‘살림터’라고 이름붙인 이곳에서 17∼18가구가 임시로나마 하늘을 가릴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노숙인 자활과 위기가족 돌보기, 재개발 철거민 상담 등 주거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전방위로 벌였다. 그중 실직 노숙인 쉼터로 운영한 서울 보문동 ‘아침을여는집’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쉼터 생활자들이 인근 달동네 낡은 집을 고쳐주는 봉사에 나선 것이다. 99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60곳 이상을 수리했다. 

“노숙인에게는 ‘내 힘이 아니라 국가 도움으로 산다’는 자괴감이 있어요. 가장 필요한 게 자존감 회복이죠. 물질적 도움보다 필요한 게 일할 기회 그리고 ‘나도 이웃에게 나눠줄 게 있다’는 자신감이더라고요.” 

이 경험으로 그는 뜻을 같이 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2006년 나눔과미래를 설립했다. 다음 해에는 성북주거복지센터를 시작으로 성북구와 동대문구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상담과 ‘공익 집수리 사업’을 벌였다. 2008년 ‘평지집수리센터’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지난해 사회적기업 나눔하우징으로 발전했다. 이 회사는 공익 집수리 사업을 계속하는 한편 일반 인테리어 공사도 적극적으로 맡는다.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현재 이 회사에는 노숙인 출신 근로자가 3명이다. 

지난해 말 그에게는 일터가 하나 더 생겼다. 은평구청과의 합자회사인 주식회사 두꺼비하우징이다. 올해 중반쯤 본격적으로 가동될 이 회사 역시 지역의 주거 환경을 개선·유지하는 공익사업을 한다. 

실질적으로 그는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다. 스스로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지만 경영 방침은 확실하다. 이윤 창출보다 사회 서비스를 우선시한다는 목표를 지켜 나가고, 동료들과 민주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언젠가 초심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늘 고뇌한다”면서도 ‘은근히 믿는 구석’을 귀띔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때 경험한 뜨거운 신앙이 제 자산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 자산을 마일리지 꺼내 쓰듯 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신 예수님의 삶은 늘 제 안에 바위처럼 자리하고 있지요.”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