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배워갑니다.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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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4:30본문
2009.10.26
남철관
지난 5월5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길에서 이슬을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했던 고민이 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다. 이왕 시작한 글이니 솔직하게 써볼련다. 나도 흔히 말하는 속물 중의 한사람이다.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경제력과 지식으로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다.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며 염세주의를 갖고있는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라고. 처음에는 신기했다. 궁금하기도 하였고 알량한 잣대를 가지고 내가 무엇이 된것 마냥 이슬을 맞는 이들을 이끌고 싶었다.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에 대한 답을 도출하려고 했다.
이제 5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변한것은 없다. 변한것은 내 마음가짐정도일까나. 처음엔 동정으로 시작한다. 불쌍한 사람들. 후에는 일로 바뀐다. 좋든 싫든 이것은 일이다라고. 수많은 생각을하고 소위말하는 매너리즘(?)이 생겨서 나의 감추어두었던 속물근성이 나오기도 하였다. 짧은 5개월동안 무엇인가가 크게 바뀌길 바란 나의 생각은 오산이고 오판이였다. 다시 나에게 존문하기도 한다. 그들을 바꾸기 위해서 스스로는 정말 노력을 하였나 하고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자신이 없다. 정작 자신은 아직도 그들에게 말걸기를 꺼려하면서 무엇이 바뀌기를 바랬는가라고 말한다. 정부의 문제다. 정치적 문제다. 사회적 구조의 문제다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았나.
동정에서 매너리즘으로 지난 지금을 돌아보니 이제는 “그”와“나”밖에는 남지 않더라. 격한감정의 쌍곡선을 지난 그 선위에는 나란 존재만 남고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그”만 남았더라. 아무감정이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더 편하더라. 내 감정을 주입시키려는 대화에서 서로의 감정과 감정이 오가는 대화가 나에게는 퍽이나 신기했다. 이것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도 어느 감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짝사랑같은 나의 감정이 언제, 어떤모습으로 바뀔지는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 과도기 아니겠는가.
5개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거리에선 이슬을 맞고 쪽잠을 청하고 그들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아니 따갑기까지 하다. 내가 할수있는것? 물론 없다. 주거지원이니 복지지원이니 어쩌면 한낱 유흥일지도 모른다. 그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가 하고싶었던 이야기, 그의 삶, 그의 유행(有行)을 그저 들으며 공감해 주고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딱히 변화는 없다. 마음가짐만 바뀌었을뿐 내가 주어진일, 해야할일, 하고싶은일은 명확하다. 여전히 99%의 만성에 대해도 고민하고 방법론을 찾을것이며 위치에 따른 역할에 충실할것이다.
매주 화요일 우리의 노숙형님들을 만나뵈러 간다. 이제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봐야겠다. 내 알량한 잣대로 “만성인사람들은 말걸어도 소용없어”라는 결론을 집어치우고 인사를 건네봐야겠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니가 그들에게 알려주는것보다 배우는게 더 많을것이다.”
이제와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느냐만,
오늘 역시 그들에게 한수배우고 간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