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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 [200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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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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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7

이제원

 

고등학생일 때 나를 감싸고 있던 명제,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나는 몇 가지 답을 해 본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나 유치한 답이긴 했지만, 당시엔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 명제를 잃어버린 난 학점, 토익, 회사(좋지는 않았지만)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내게 그 명제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에게 있어 아침을여는집 입소인 중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분은 태인(가명, 43세)씨이다. 처음으로 사례관리자로 지정이 되었고, 처음으로 장시간 상담이 이루어졌고, 처음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처음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말씀하셨고, 처음으로 사적으로 같이 시간을 보내고 등등등. 이런 이유로 아침을여는집에서 일하는 내게 태인씨는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분이다. 

 

태인씨는 경상도 대구분으로, 평소 과묵하다. 생활할 때 그런 것은 고향 탓, 성격 탓이라고 하여 이해가 가지만, 이 분은 상담할 때도 과묵한 것으로 일관하니, 상담자로서 기운이 빠지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상담은 항상 나 혼자 떠드는 것으로 계속되었고, 그래서 한 번은 말없이 있는 태인씨가 야속하기도 하고 약도 올라 누가 이기나 하고 서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던 적이 있었다. 10분 쯤 지났을까 -체감시간으로는 1시간도 더 된 것 같은 고통이 있던 차에- 태인씨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담배나 같이 피자고 하여 나갔더니 나보고 독하다고 하면서 크게 웃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태인씨가 과묵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힘든 일이 많아서이다. 평소 믿고 있던 동생에게 빚보증 잘 못 서서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게 되고, 채권자에게 시달리면서 많은 고통을 안게 되었다. 지금은 파산면책으로 부채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어 사람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보니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말하는 것을 극도로 아꼈다. 

 

더욱이 올해 3월에 서울시 일자리갖기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는데, 사장의 아내가 워낙 까다로운 사람이라 태인씨를 달달 볶으며, 힘들게 해서 그만 두게 되었는데, 급여를 주기는커녕 사장의 부인은 그동안 먹은 식사비용을 받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며 태인씨에게 무안을 주었다. 이 일로 노동부에 재판을 하여 급여를 받게 되는 줄 알았지만, 사장이 수술을 받은 관계로 그 쪽에서는 급여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태인씨는 이 일이 해결되야지 마음 편히 먹고 다른 일이라도 한다며, 종일 이 일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7월 말에 사장을 알고 있던 교회의 한 분이 자비로 급여를 지급하면서 해결되기는 하였지만, 이 문제로 4개월 동안 아파했던 상처는 그대로 가슴에 깊이 새겨진 이후였다. 

 

그 후 태인씨는 더욱 말수가 줄었으며, 언제나 인상은 굳어 있었다. 그 후 1달 간 구직활동을 하며, 이력서도 많이 넣고 면접도 많이 봤는데 굳어진 인상으로 퉁명스런 말만 하는 태인씨를 뽑고자 하는 기업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러다가 한 달 전 성북자활후견기관 청소사업단에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규정된 인원이 다 차서 일단 인원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만을 받았다. 이때 태인씨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내 진작에 알아봤어.’라고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는 나도 왜 이분에게만 이러한 일이 생기나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청소사업단에서 추가로 한 분이 더 일하게 되어 태인씨가 7개월 간의 무직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7개월 간의 고통이 지난 후 일자리를 얻게 된 태인씨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들어와서 청소하느라 힘든 몸을 이끌고, 방수장비를 만드는 부업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던 것이 이제는 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같이 하는 사람들로부터 ‘공장장’이라는 별명을 얻어 그 일의 총감독을 맡은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에 없던 자신감을 찾아 얼굴엔 미소가 깃들기 시작하고, 퉁명스런 목소리에는 활기찬 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 당직을 하고 있는데 태인씨가 조용히 들어와 추석 때 첫 월급을 받자 지인 한 명이 돈을 빌려 달라며 하도 귀찮게 굴어서 어쩔 수 없이 10만원을 빌려주었는데 이 사람이 갚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매번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갚지 않는다고 하였다. 평소에 그렇게 말씀이 없던 태인씨가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1시간이 넘어도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빌린 돈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흘러서 청소하는 이야기, 치아가 안 좋은 이야기,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이야기, 상담자인 나의 이야기까지 그동안 담아 두었던 모든 이야기를 오늘 다 해 버린 것 같았다.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목소리에는 점차 힘이 실렸고,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으며,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태인씨는 이야기를 마칠 무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그동안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다 풀리네요. 이렇게 오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전에는 주변의 시선에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애요. 주변의 시선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분이 더욱 중요한데요. 한 번 쳐지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 내가 왜 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노력해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일이 생기니까 잡생각이 안나서 좋아요.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 다른 일(방수기구 만드는 일)도 하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하다 보니까 신이 나고,”

 

단언컨대 아침을여는집에서 가장 기뻤던 일은 바로 오늘 일이다. 아니 단지 기뻤다는 일이 아니라, 그 말은 내가 사는 이유일 것이다.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마운 말이자, 나의 사명이자, 최고의 찬사이자, 나의 가르침이다.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말씀해 주셔서.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