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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의 외출 [2008.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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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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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17

 

내가 사회복지현장에 뛰어든 뒤, 홈리스복지로 쪽방과 쉼터를 전전하며 8년을 사회복지 일을 한답시고 폼재고 다녔지만 우리 주변에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이웃을 가슴으로 만난 것은 오늘 처음이다.

사회복지현장 경력으로나 지역운동경력으로나 선배인 남철관 선배의 손에 이끌려 동행한 나는, 당혹스러웠다. 왠지 긴 세월 사회복지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듯한 어색함 때문이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운전하는 나를 향해 "자기가 늘 겸손하지 못하고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둥" 독백 섞인 말을 연신 뿜어내고 있는 선배가 귀엽다. 어쩐지 그런 선배의 자성적인 푸념은 오늘 있을 기분 좋은 만남의 서곡이었던 것 같다.  

 

장위동에서 17년을 살면서 가족 중에 장애가족이 있어 자원봉사로 시작한 지역주민 섬기기가 어느덧 지역의 저소득층 아이들 돌봄이로, 공부방 선생님으로 엄마와 같은 이웃 아줌마로 그렇게 활동하고 계시는 아가세 지역아동센터의 원장님을 만났다. 자기 집을 이웃들과 주변 아이들에게 완전히 오픈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사롭지 않은 분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빚도 많단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계산하지 못하는 사람 취급하며 걱정이 많단다. "자기 자식도 좀 챙기라고...^^" 

 

이웃들이 걱정할 때가 약간 속상하지만, 그래도 자기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가난한 집 아낙들과 자신과 함께 울고 웃어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단다.

시장을 볼라치면 야채 가게 아줌마는 덤으로 더 많이 주시고, 오뎅가게 아줌마는 아이들 간식에 보태라고 거저 주신단다. 

이렇게 한국의 풋풋한 인심이 살아있는 장위동 동네를 거닐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노인들의 인생여정 가운데 속상한 일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시는 할머니의 맑은 웃음과 토닥임이 정겹다. 

그렇게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을 재개발과 뉴타운이 벌집 쑤셔넣 듯 바람을 넣어놓았다. 한쪽에서는 집값 오른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러나 한쪽 사람들은 지금 사는 보증금과 월세를 가지고 줄줄이 딸려 있는 꼬맹이들 데리고 살일이 막막하다 한다.

부끄러웠다. 따닥따닥 붙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장위동의 골목에 첫 발을 내뒤딜 때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동네에 왔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교만함에서 날 구원하소서 주님" 여기가지 생각이 미칠 쯤, "아직도 난 이방인이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젠 나도 엄연히 성북구 주민이 되었는데, 나는 조용히 숨죽이며 살고 있는 주민들과 같지 않았다. 재개발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다만 멀리서 안타까움을 지켜보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원장님의 손에 이끌려 어두운 지하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92세의 독거어르신이 거주하시는 방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고 앉았다. 바닥이 냉골이다. 어떻게 겨울을 나셨을까? 혼자 거동도 불편하신 몸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난방도 안되어 있는 방에서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셨을 어르신을 상상하니, 또 부끄러워진다. 풍족하다 못해 너무 더워서 반팔로 실내에서 지내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그리고 어르신께 미안하다. 

폼이나 재며 사회복지한다고 싸돌아다닌지 8년 만에 지역사회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주님들의 모습을 대하는 내가 자꾸 부끄러워진다. 어디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어딘지 맞지 않은 옷을 걸친 느낌으로 다른 주민의 집을 방문한다. 아이들이 먼저 반긴다. 이미 청소년이 되어 있는 아이들이지만,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았을 소년들을 생각하보니, 너무도 의젓하게 자란 것 같다. 

 

올케가 조카 3명을 키우며 지금도 일을 나가서 아이들만 남겨져 있는 집에 방문하였더니, 마음씨 좋게 생긴 고모들이 만사 재쳐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지원부대로 나섰다. 함께 집수리할 공간을 줄자로 재며, 상담도 어찌나 정성스럽게 응답하시던지. 소박한 동네 아낙들의 마음에 또 고개를 떨군다. 너무나 그리웠던 가족애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다.  

 

밖에서 볼 때면, 몰랐던 정겨움들을 마을 속으로 들어와 보니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8년만의 새로운 외출을 했다.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낸 것이 감사할 뿐이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