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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고.. [20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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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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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2

이제원

 

아쉽고, 안타까운 이야기. 

 

아침가족들과 한솥밥을 먹은 지 이제 4년이 되어가네요. 

그동안 싸우기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다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시간이 흘렀을지 모를 정도로 참 많은 추억과 아픔이 있습니다. 

이중 최근에 있었던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운 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형씨는 알코올중독,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아침가족이 되었습니다. 입소상담 당시 술을 끊겠다는 말씀에, 말로는 꼭 그렇게 하실 거라고 격려하면서도 내심 믿지 않았어요. 술을 끊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형씨는 거짓말같이 술을 끊었습니다. 그리곤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저축하면서도 다른 가족들과도 잘 지냈어요. 이런 노력의 성과로 희망플러스통장(자활의지가 높은 차상위계층 이하의 저소득층이 자활할 수 있도록 1:1 매칭을 통해 매월 20만원을 적립하면 3년 후 1,600만원을 저축하는 통장임. 이하 희망통장.)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죠. 서울시 노숙인 약 2000여명 중 29분만 선정하였으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신용불량의 경우 희망통장에 가입이 어렵습니다.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이던 수형씨는 빚이 1억이 넘어 갚을 수가 없어 파산면책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제가 빌린 돈 저는 다 썼는데 그냥 서류 몇 장 올려서 1억이 넘는 돈 탕감하는 것은 양심에 걸려서 못하겠네요. 차라리 파산면책보다는 떳떳하게 채권사를 찾아가 사정하여 분할상환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라며 파산면책을 포기했습니다. 이러한 수형씨의 말이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6000만원이 넘는 최대 채권사가 분할상환은 커녕 한푼도 깍아주지 않아 수형씨는 분할상환을 포기했어요. 그리곤 세상이 너무 야속하다며 10개월 동안 끊었던 술을 입에 되었고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죠. 

 

입원 기간 중 희망통장 약정식이 있었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약정식에 참석하신 수형씨는 제게 신용불량인데도 가입해도 되느냐며 몇 번을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노력한 것도 있고, 신용문제야 파산면책이든, 개인회생이든 가능하니 우선 약정한 후 이를 설명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서 약정을 맺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 마음과는 달리 신용불량 문제로 희망통장 약정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죠. 

 

이 일을 계기로 수형씨는 파산면책을 다시금 결심하였고 퇴원하는 날 저와 함께 바로 파산면책 서류를 모두 만들 정도로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법률상담소에 찾아가니 다 괜찮은데 아버지의 재산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전세계약서)가 빠졌으니 이것만 다시 제출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수형씨는 바로 그동안 왕래도 없이 남처럼 지내던 집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수형씨의 말을 믿지 않고 절대 줄 수 없다며 어서 나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전세계약서는 진술서로 대신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파산면책은 준비하는 데만 3개월 가량 걸릴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 수형씨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스트레스로 다시 술을 입에 대고선 다음날 힘들게 쌓아왔던 노력을 포기하고 아침을여는집을 떠났습니다. 오늘 다른 쉼터를 술에 취한 채로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으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왜 하필 지금...”

“조금만 있다가 하면 얼마나 좋아”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을 정도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자활사업은 아차 하면 떨어지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수형씨가 스트레스로 괴로워할 때 함께 아파했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사정은 나았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