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아갔습니다 [200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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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26본문
2009.1.16
이제원
어제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수년간 거리아웃리치를 수행하고 있는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하 실천단)과 함께 했습니다.
장소는 제가 아침을여는집 활동가가 된 후 거리아웃리치를 했던 시청역이었습니다.
2007년 4월 쉼터에 전념하고자 아웃리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웠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믿음 하에 자신감을 갖고 참여하였습니다.
- 덕수궁 지하도
덕수궁 지하도는 시청 등지에서 생활하고 계신 분들 중 가장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하도다 보니까 그만큼 바람이 술술 들어오고 청소상태도 지하철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합니다.
3-40미터의 지하도에 12분 정도가 박스로 집을 짓고 이제 막 주무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커피며, 빵이며 나눠 드리는데 다행히 실천단이 꾸준히 인사드렸던 터라 우리를 믿고 이것 저것 말씀도 하시며, 수고한다고 격려도 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반가웠던 일은 퇴소했던 오진(가명)이를 만난 것입니다.
오진이는 2005년 12월 을지로입구에서 거리노숙을 하다가 저희 아웃리치를 통해 아침을여는집에 입소한 친구입니다. 지금은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에 입주를 해서 살고 있으면서도, 혼자서 거리노숙하는 분들을 위해 아웃리치를 하는데 거리노숙을 했던 경험과 신발이 필요하다는 노숙인과 선뜻 신발을 바꿔 신을 정도로 마음씨가 고운 친구입니다.
거리노숙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곳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서로 침낭이며, 옷이며 갖다드려도 자기보다 더 힘든 분에게 기꺼이 전해줄 만큼 상호간의 의리(??)가 있습니다.
박스에만 의지해 주무시고 있는 김선생님을 위해 지난 주 신청했던 본인의 침낭을 선뜻 전해 주며, 자신은 젊고 내복을 입고 있으니 참을 수 있다며 미소짓던 어느 선생님.
알콜 및 싸움 등 문제발생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는 모습 속에는 거창하진 않지만 소중한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 시청역
2년 전에는 바람이 들어오는 계단에서 모여 있었는데 어제 가 보니 지하철 직원들이 겨울동안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좀더 깊숙한 곳(시청역에서 을지로입구역으로 통하는 지하보도 초입)에 몸을 뉘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곳에는 15분 정도 계셨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낯익은 얼굴이 몇 분 계셨습니다. 특히 방선생님은 제가 이름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같이 저를 반겨주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분은 발이 새까맣게 될 정도로 씻지를 않고 저희가 드리는 커피와 빵도 거절하는 분이 계셨는데 같이 생활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저 분이 먹는 것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베일에 쌓인 분이셨습니다. 식사도 못하시고, 씻지도 못하시다가 잘못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어 말을 건네 봐도 아무 말씀없이 째려 보시기만 합니다.
- 마치며
아웃리치를 번역하면 다가섬입니다.
거리노숙인들은 보통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이유로 밀려난 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음을 닫고 세상과의 소통을 멀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자신의 힘든 이야기, 왜 노숙까지 하게 되었는지 들어줄 사람도, 이해해 줄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고립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리노숙인을 위해 꾸준히 다가섬을 하고 진실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그 분들과 소통하고자 한다면 그 분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