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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빈라덴 [2008.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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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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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20

이주원

 

지난 5월 29일, 노숙인의 죽음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장소는 구의동에 소재한 슈퍼마켓이었다. 노숙인이 소주 한 병을 훔치려는 것을 본 주인이 소주를 빼앗는 과정에서 술병이 깨졌다. 그 깨진 병조각 위로 노숙인이 넘어지면서 무릎 아래로 피가 강한 물살처럼 솟구쳤다. 결국 과다출혈로 인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안타까운 사건은 어이없는 것이기도 한데, 당시 출동한 경찰의 늑장 대응으로 노숙인의 과다출혈이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이 보도를 보면서 몇 년전에 남산에서 만났던 노숙인 한 분이 떠올랐다. 그는 거기서 꽤 오랬동안 노숙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나와 동행한 동료가 “오늘은 남산에 빈라덴을 만나러 가자”고 해서 꽤 궁금한 마음으로 남산 계산을 올라갔다.

 

동료 말대로 남산에는 빈라덴이 살았다. 턱수염을 꼭 빈라덴처럼 길러 붙인 별명이란다. 간이 안 좋아 배에 물이 차서 엎드려 누울 수조차 없다고 하소연 하시는 빈라덴. 뜨거운 커피 곱빼기를 주문하시는 그에게 물었다.

 

“아프다면서. 그럼 서울역 치료소를 찾아가서 진단이라도 받아 봐요. 왜 고집스레 안 가는지 모르겠네.”

 

내 물음이 끝나자마자 빈라덴의 변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병명도 안 가르쳐준다. 가봐야 소용이 없다. 귀찮다…. 그래도 오래 살고는 싶은지 소주만은 안 마신다고 강조했다. 

 

“난 소주 먹으면 죽어. 소주는 요기도 안 되고 말이야. 그래서 난 막걸리를 마셔. 막걸리는 배도 부르잖아.”

 

빈라덴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다른 홈리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일주일동안 쐬빠지게 벌어서 경마장 말 궁둥이에 갔다 처박는 놈들을 보면 이해가 안돼. 전에 쉼터 생활을 4개월 해봤지만, 쉼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50% 이상은 경마장에 다닐걸. 하여간 미친놈들이라니까.” 

 

동감했다. 많은 홈리스 쉼터에서 일주일 내내 막노동 등 고생하고 경마장, 경륜장에 돈을 갖다 바치는 홈리스들이 꽤 있다. 차마 말로는 못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미쳤어. 정말 미쳤어.”

 

당시 남산공원의 노숙문화는 서울역 지하도와 비교해서 너무도 청결하고 질서 있게 보였다. 빈라덴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서울역 지하도와 달라. 여기는 깨끗해. 아침마다 청소도 한다”고 서울역 지하도와 다르다고 강조하였다. 

 

사실, 노숙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특히 서울역 지하도가 변해야 한다. 시민들이 거리 홈리스들에게 갖고 있는 낙인의 대부분은 서울역 지하도 홈리스들이 제공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 문화는 노숙인을 지원하는 내가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서울역 지하도는 하루빨리 어떤 형태로는 변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홈리스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남산공원도 그렇지만 거리 홈리스들은 주로 인적인 뜸한 곳에서 잠을 청한다. 그래서 폭행이나 동사의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래도 이들은 서울역 지하도는 잘 안 가려 한다. 그만큼 서울역 지하도는 거리 홈리스 대부분에게도 외면의 장소였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