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주거정책 현실과 과제 [예전 글]
페이지 정보
나눔과미래 16-07-08 16:47본문
노숙인 주거정책 현실과 과제
-이동현-
가난한 사람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들 집값 걱정하는 시대이다. 정부에서는 집값을 낮추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그래도 내집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거복지정책'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를 경험하는 소수자들의 주거권 현실을 살펴본다면 주거권 실현이 집값잡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거복지정책'은 오히려 배제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누구에게 어떤 집이 필요한 지를 묻지 않고 상품만을 찍어내는 주거, 부동산정책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주거권 실현도 기대할 수 없다.
지난 9호에서 살펴본 장애인주거권현실에 이어 이번 진보복덕방 10호에서는 노숙인 주거권 현실을 살펴보면서 보편적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과제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편집자주]
2005년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적절한 주거를’이라는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지나던 시민 한 분이 “노숙자들한테 다 집을 주란 말야?”라며 가당치도 않다는 듯 핀잔을 했다. “그게 아니고...”라며 몇 마디 설명하려 했지만 그는 벌써 몇 걸음 지나간 후였다. 건교부 내 주거복지과가 생겨나고 최저주거기준도 공포되었으나, 국민들에게 주거복지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하다. 비단 홍보의 문제가 아닐 것이, 주거복지의 결과물은 주거공간을 찾는 과정에서 손에 잡힐 만큼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종 주거권에 대한 요구는 남들 다 평생 벌어 사는 집을 공짜로 먹겠다는 이기적인 집단의 투정쯤으로 곡해되곤 한다. 특히 사회적 낙인이 심한 노숙인들에 대한 주거권 요구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여타 부문의 주거권 요구가 그러하듯, 노숙인의 주거권 요구 역시 주거권의 보편적인 향유를 지향하며, 또한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울러 노숙인의 주거권은 극한의 주거권 배제 상황인 ‘노숙 상태’에 처한 이들에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곧 사회의 주거 안정망으로서 기능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이 나와 ‘상관있는’ 이야기로 읽혀지길 기대하며, 현재까지 진행된 노숙인 주거정책을 간단히 짚어보고, 향후 개선 방향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최초의 노숙인 주거정책은 ‘자활의 집’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 자활의 집은 시․군․구청장이 전세 계약한 주택을 가족 단위 노숙인을 우선 순위로 하여 최장 4년간 무상 임대하는 정책으로 1999년 서울시에서 시범 실시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장되었다. 대부분 서울에 편중되고 사회복지지원을 위탁 쉼터에 떠넘기는 한계가 있으나, 가족 해체를 방지한다는 점, 취업이나 주거지 마련과 같은 긍정적 퇴거가 다수라는 점 등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올 해 서울시는 전세 값 상승을 이유로 매년 단계적으로 늘이기로 했던 자활의 집을 추가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자활의 집에 대한 평가조차 생략한 채 예산을 이유로 자활의 집 정책을 사장시키는 것은 부당함은 물론, 전세 값 상승의 주범이 누군가를 생각해 볼 때 이런 발상은 어이없기까지 하다. 서울시는 이를 대체하여 재개발임대주택의 보증금을 지원한다지만 임대료 부담으로 인해 중간주택의 기능을 수행했던 자활의 집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두 번째로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있다. 주민의 기존 생활권 보장, 임대주택 집단화에 따른 슬럼화 방지의 목적으로 시작된 매입임대주택은 2005년 단신계층용 매입임대 300호 시범사업을 통해 ‘노숙인, 쪽방거주 단신자, 기초법 상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취약계층’에게도 입주기회가 열렸다. 단신계층용 매입임대 사업은 비록 시범사업으로 시작됐지만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을 임대주택 정책 대상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후 서울시는 SH공사의 다가구 매입임대주택을 활용한 노숙인 주거지원을 실시하였고, 작년 말 주택공사는 쪽방 주민들이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주거지원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 매입임대주택 정책들은 6년이라는 거주기간의 제한, 원룸과 같은 단신자용 주택 확보 미흡, 기존 생활권 내 주택 확보 실패, 사회복지 지원 누락 등 여러 한계들을 보이고 있다.
간단히 살핀 것처럼 현재 ‘노숙인 주거정책’이라 부를만한 것들은 프로그램식 사업이거나 기껏해야 건교부의 업무처리지침 정도에 근거한 제한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그래도 전무하던 주거 정책이 하나 둘 생기지 않았느냐는 낙관적 전망도 가능하겠지만, 여전히 시설입소 를 골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노숙인 복지 체계를 바꿔내지 않는 한 주거정책은 열등처우 원칙에 기댄 잔여적 지원에 머물고 말 것이다. 주거가 없는 이들은 일단 시설을 거쳐야 한다는 격리와 수용의 역사를 버리고, 국가는 국민에게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주택을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주거권 인식이 노숙인 정책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몇 가지 노숙인 주거정책 개선방안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노숙인’이라고 불리어지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주거권적 재편이 필요하다. 우선 노숙인의 2/3가 살아가고 있는 쉼터의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노숙인 쉼터는 한 방에 평균 5~6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30명 씩 생활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내무반식 생활은 사생활을 전혀 보장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시설’이 노정하는 한계임에 분명하지만 노숙인 쉼터를 디딤판으로 주거상향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사생활 보장 등 주거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다. 실제 쉼터 입소 경험자들이 꼽는 제일 큰 고통은 ‘공동생활로 인한 사생활 침해’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2005년 1월 만들어진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으로 노숙인 쉼터의 시설, 설비기준이 생겼지만, ‘1실 당 사용인원’등 사생활 보장과 관련된 기준은 누락되어 있다. 운영규칙에 포함된 여타 기준들도 2010년까지 충족해야 하나 보호사업 주체인 지방정부들의 미온적 대응으로 적잖은 파장이 예고된다. 서울시의 경우, 소규모 쉼터 통폐합이란 이름으로 20인 이하 쉼터를 점차 폐쇄시키고 있는데 이는 지자체에 대한 책임성 논란을 공격적인 방식으로 피해가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둘째, 거리 노숙 ‘상태’에서의 주거권 보장이 필요하다. 물론 뜨악한 주제일 수 있다. 거리 노숙으로 인해 총체적 인권 침해가 벌어지는 마당에 ‘거리에서 생활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과연 인권적인가 하는 논란이 가능하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을 근거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거리 노숙인에게는 독립 주거를 선택하거나, 쉼터에 갈 선택지가 유일한데 독립 주거를 구하기엔 돈이 없고, 쉼터는 사생활 침해로 인한 공동생활 적응이 어려워 가기 싫은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시 등 지방정부는 쉼터라는 유일한 카드를 제시하며 순찰대 편성 등 폭력적 수단까지 동원해 입소를 강제하고, 노숙금지구역 추가지정, 청계천 이용에 관한 조례 등을 통해 거리 노숙을 근절하려 하고 있다. 매입임대주택의 입주에 있어 거리노숙인들은 배제되며 일자리 제공 역시 쉼터 인원을 배정하고 남은 일자리에만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지하철공사, 코레일 등 거리 노숙인들에게 개입할 수 있는 권력들은 물품 보관함 이용방식 변경(동전→고급형 교통카드), 상습 물청소 등 시민 편의 증진이라는 고객 마인드를 동원해 거리 노숙인 배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 노숙인들에게 있어 ‘거리’가 유일한 선택인 게 현실이라면 그들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며 여타의 행정적 배제나 폭력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쪽방 철거 중단과 재생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도심 내 슬럼이라 할 수 있는 쪽방은 주거빈곤층의 마지막 잠자리로서, 노숙을 방지하는 그물이자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쪽방은 도심 내 노른자 땅에 위치해 있어 절대 다수가 개발 사업의 압력을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03년 10월 영등포 1동, 2006년 8월 영등포 2동의 260여 개 쪽방이 도시계획시설 사업으로 철거되었고, 2005년 남대문로5가동의 400개의 쪽방이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철거되었다. 개발사업으로 인한 쪽방 철거는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일어날 예정인데,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촉진사업, 도시및주거환경정비사업, 민간개발사업’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러질 것이다. 그러나 쪽방 철거에 병행되는 보상은 쪽방주민의 사회,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일부 임대주택이 공급되는 사업의 경우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주민들의 주거 빈곤 심화라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된다. 실제 영등포 1동 쪽방 철거민 중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는 5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노숙 혹은 다른 쪽방, 보증부 월세 등으로 이전한 반면 재고 감소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주거비 부담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쪽방 지역 개발사업은 쪽방 주민들의 희생을 거름삼아 개발사업자나 지주들에게 높은 부가가치를 안겨주는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쪽방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화재에의 위험과 같은 안전의 문제까지 겹쳐 손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쪽방의 입지적 특성, 쪽방지역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와 같은 순기능을 살림과 함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쪽방 지역을 도시빈곤층의 주거자원으로 재생시키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철거가 필요한 지역의 경우 해당 주민들에 대하여 임시주거시설, 기본생활권이 유지될 수 있는 대체주택, 임대보증금 융자지원 등의 주거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이에 따른 기준과 세부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대책 수립 이전에는 각종 개발사업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중단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단신 생활자를 위한 주거 정책이 실시되어야 한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20%가 단독 가구인 것으로 나타난 데서 알 수 있듯 단신 생활자를 위한 주택 정책은 무엇보다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쪽방 주민의 90%가 단독세대이듯 단신 빈곤계층을 위한 주거 복지 정책이 시급한데 현재의 주택 정책은 이러한 주거소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교부의 ‘주거지원업무’ 역시 단독 가구를 위한 원룸 주택 확보가 안 되는 상황에서 1월 현재 92가구 입주계약이라는 부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현재 임대주택 정책은 단신자들에게 불리한 입주 조건을 통해 단신 빈곤계층을 쪽방, 여인숙, 고시원과 같은 불안정한 주거지로 배제시키고 있다. 특히 단신 빈곤계층의 주거지로 변형된 고시원의 경우 안전과 주거환경 등의 문제가 있으나 개선 계획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고시원 화재 문제가 빈번하자 복지부는 숙박형태의 고시원은 숙박업으로 신고하고, 주거지역내 숙박형 고시원은 독서실로 전환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으나 수익률 저하를 의식한 고시원 업주들의 반발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일방적인 방식은 한계적이다. 미 연방정부는 ‘홈리스의 지속적인 보호’ 전략을 토대로 단신자 숙소인 SRO 주택은 물론 기숙사, 단독주택 등을 ‘주택품질기준(HQS) 충족, 방이 최소 1/4이 비어있어 즉각적으로 입주 가능할 것’의 조건을 갖춰 개조할 경우 개보수비용 및 건물 유지관리비 등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를 통해 입주자들은 세후 소득의 30%를 넘지 않는 선의 주거비를 부담할 수 있게 되었고, SRO 주택은 단신 생활자들의 주거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 역시 고시원, 쪽방을 비롯하여 기존 주택들을 단신자를 위한 주거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나, 현재까지의 정책은 소위 ‘불량 주거’란 이름으로 철거하거나 제재하는 방식이 전부이다. 최근 서울시는 이문․휘경 뉴타운에 원룸형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3월부터 단독가구도 영구임대주택에 입주 지원할 수 있게 하겠다하나 주택 재고량이나 적정한 임대료 등의 문제로 단신 빈곤계층의 주거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노숙’에 대한 개념규정(사람에 대한 것이 아닌 상태에 대한 지표로)과 이를 통한 공공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부여가 필요하다. EU를 비롯한 서구의 경험이나 최근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홈리스 상태를 폭넓게 규정하고, ‘주택법’ 혹은 홈리스 지원 단독법에 임시거처나 항구적인 주택의 제공에 있어서 홈리스 우선지원을 명문화해 주거보장과 주택정책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숙인’에 대한 개념을 매우 협소하게 적용해 쉼터 위주의 시설수용정책을 옹호해 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노숙인의 주거 문제는 노숙 생활의 시작과 반복, 장기화의 문제로 이어지는 만큼 노숙인 주거정책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법률적 근거 마련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펌)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