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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그들은 어디서 자는가? [200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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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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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23

이주원

 

노숙인들에게 하루를 보낼 잠자리를 구하는 일은 끼니를 해결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들에게 노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이란 ‘좋은 것들을 얻어먹고, 좋은 곳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자는 것이 이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는 장소’에 관한 지식은 노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이 생활하려면 밥 잘 얻어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자리 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 처음에야 당장 배고프니까 잠자는 건 둘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자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거든. 제대로 못 자면 금방 몸이 축나서 꼬지하러도 못 다녀. 잘못하다간 갱생원 같은데 끌려가기 십상이야. 그리고 마음이 추워서 그런지 여름에도 아무데서나 자면 새벽되면 춥거든. 병나발 불고 자도 마찬가지야. 하여간 처음엔 매일어디서 잘까 궁리하는 게 일이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난장칠 데도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부터는 좀 쉬워졌지.”

노숙인들은 ‘어디서 자는 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자는 장소’에 대해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40여 군데에서 100군데까지 열거하는 노숙인도 있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노숙 장소들이 보유하는 장단점이나 특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곳이 겨울(혹은 봄, 여름, 가을)에 잠을 자기 좋은지, 안전한 장소인지 등에 관해 매우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노숙 가능한 장소를 노숙인들은 두 가지 범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잠을 잘 수 있는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난장을 치는 장소’이다. 이때 ‘잠을 잔다’는 것은 숙면을 취한다는 것이 반면, ‘난장을 친다’는 것은 잠을 잔다는 의미보다 간신히 밤을 지새웠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럼 노숙인들에게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이들에게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로는 쉼터, 쪽방, 여관, 여인숙, 고시원, 만화방, 기도원, 교회, 절, 성당, 함바집, 찜질방 등이 있다. 반면, ‘난장을 치는 장소’로는 서울역 지하도, 을지로입구 지하도, 구 쁘렝땅백화점 지하도, 용산, 종묘공원, 정릉천, 회현역 지하도, 영등포역 지하도, 서소문공원, 인천역, 대구역, 대전역, 부산역 등이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주요노숙지역이 지하철역 지하도인 이유가 있다. 우선 난장을 치느라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노숙인들은 새벽4시쯤에 일어나 주변을 정리한 뒤 5시부터 아침을 먹으러 가던지, 못다 잔 잠을 자기 위한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들은 주로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그들 표현대로 ‘빵차(돈을 내지 않고 지하철 무임승차하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를 타기’ 위해서는 지하철역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것이 이동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노숙인들 중에서 좋아서 노숙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돈만 있다면 길거리에서 난장 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겨울철이나 장마철에 길거리에서 난장 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철과 장마철에는 길거리 난장을 안 하고 여관, 여인숙, 쪽방 등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숙 생활이 길어지면 적응력이 생겨나 추위와 비가 몰아치는 계절이 돌아오더라도 난장이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여관, 여인숙, 쪽방에 들어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도 쪽방, 여인숙 등을 찾는다면 그 이유는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노숙인들은 대부분 미혼이거나 가정해체를 겪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먹고 자는 것 이외에 중요한 욕구의 하나가 바로 성적 욕구이다. 노숙인들은 성욕을 주로 매춘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잘 곳이 없어서 거기(쪽방, 여관, 여인숙)에 가는 경우는 없어. 사방에 널린 게 잠자린데 굳이 돈을 주고 거기 들어가서 잘 이유가 없지. 우리가 거기 갈 땐 여자 생각나서 가는 거야. 혼자서 떠돌아다니니 여자 생각날 때가 많고, 돈이 없어서 좋은 곳은 잘 갈 수가 없으니까 술 한 잔 꺾고 여자 부르러 가는 거기. (쉼터의) 간사들이나 서울역에서 상담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여관이나 쪽방에 들어가는 게 날씨가 춥거나 비가 와서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거기에 가는 건 대부분 여자 생각나서야.”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