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께 드리는 한 통의 편지 [200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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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31본문
2009.3.13
고성현
<이 글은 며칠전, 쉼터에서 생활하시는 아저씨들께 드린 ,부끄럽지만 진심어린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아침을여는집’ 식구 여러분께,
글로 마음을 전하려고 하니, 좀 어색하지만 더 좋네요.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마음의 상태를 묻는 심정으로 여쭙는 질문입니다.
쉼터 생활이 많이 외롭고 불편하시고 힘드시죠?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진정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된 사적 공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적잖은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3가지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힘겨운 시기를 잘 견디셨으면 합니다.
1. 조만간 웃으며 쉼터를 떠날 날이 있을 것이다.
2. 나만 외롭고 불편하고 힘든 건 아니다. 함께 견뎌가고 있다.
3. 이 세상엔 우리보다 훨씬 외롭고 불편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부디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시고, 지금의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시어머니의 비애
최근 저는 깐깐하고 권위적인 시어머니가 된 기분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시죠?
특히 엊그제 있었던 식구 한 분의 퇴소거부에 따른 강제퇴소과정 속에서,
본의 아니게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유여하를 떠나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그 일은 제 진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분의 퇴소는 그분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본인에게도 수차례 얘기했지만, 제 소견으로는, 여기를 떠나야 일어설 수 있는 분입니다.
퇴소거부 및 사무실 소란행위를 했다고 해서 굳이 공권력까지 동원해야 했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변명하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이 곳을 떠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고, 당시 다소 감정적으로 과잉반응했던 부분도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되돌아보면, 퇴소 설득이 부족했었다는 자책감도 듭니다. 저의 부족한 점입니다.
사랑으로 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결국 사랑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께 저의 모자람에 대한 양해를 구합니다.
솔직히 깐깐한 시어머니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고 괴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이미지 관리보다는 앞으로 여러분의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향후 쉼터 운영을 지시와 복종 관계로 끌고 가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약속과 실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축과 구직노력, 그 밖에 크고 작은 생활규칙들은 여러분 모두 지켜야 할 약속이며,
저는 그 약속을 잘 실천하고 계시는지 지켜볼 책임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속을 실천하는 건 힘들지만, 그 열매는 모두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식상하고 메마른 권면 같지만, 우리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격언으로 생각되어 말씀드립니다.
일어서려는 것과 주저앉는 것은 다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가뜩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 아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이 닥칠 때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일어서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냥 주저앉는 것입니다.
현재 주저앉아 있는 상황은 같지만, 태도에 따라 미래의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일어선다는 것은 ‘받아들임’을 전제로 합니다.
왜 이런 고통이 내게 일어났느냐며 원망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고통의 원인이 전적으로 남의 탓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친 원망과 불평은 자칫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실패와 고통에 집착하면 할수록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오히려 위기에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일어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전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백수와 구직자는 다릅니다.
백수는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사람입니다.
구직자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일이 없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일하는 사람’ 혹은 ‘일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노숙인’이라는 낙인에서, 그리고 이 ‘노숙인쉼터’에서 웃으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빈둥거리며 놀고먹고 싶은 사람이 행여라도 계시다면, 오늘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어주십시오.
습관을 바꾼다는 게, 생각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힘겨운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일수록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자기’라고 하는 거대한 상대에게 도전장을 내미십시오.
도전하고, 다시 도전하고, 노력하고, 더 노력해 보십시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자기 자신을 신뢰하십시오.
마음이 달라지면 생활이 달라지고 주위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집니다.
모든 일이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아시죠?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도 있다는 거 아시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힘내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때론 모질더라도 넓은 이해를 부탁합니다.
2009년 3월 5일
아침을여는집 고성현 목사 드림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