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행려 병동,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20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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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59본문
2009.10.24
오범석
2009년 10월 24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기아와 에스케이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이 중계되고 있는 시간, 에스케이가 3점을 내고 있는 그 시간에 갑자기 핸드폰에서는 영국팝 그룹 McFly의 "All About You"가 흘러나온다.
"이대쪽(가명) 어르신이 선생님을 뵙고 싶어하세요. 지금 빨리 병원으로 와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전화였다.
이대쪽 어르신은 쉼터에서 생활하시던 어르신으로 벌써 한 달전에 복막염으로 **시립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하신 분이다. 입원하시던 날, "조금난 늦었으면 위험하실뻔 했어요" 하고 말씀하시던 외과 과장님의 소리가 다시 귀전에 맴돈다. 기억해 보니 그 날도 토요일 오후 이 시간쯤이었다.
헐래벌덕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고, 쉼터를 나와 병원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중간에 평상시 어르신을 잘 돌보아주시던 '노숙인매입임대주택'으로 독립하신 정선생님에게 연락하여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병실로 갔더니 이미 중환자실로 가셨단다. 어르신께서 한 달여 남짓 사용하시던 그 침대에는 이미 다른 노숙인 환자가 침대를 차지하고 계셨다.
그렇게 중환자실로 이동 후, 어른신과의 면담을 신청하기 위해 간호사를 찾았다.
간호사가 면회시간은 아니지만, 어르신께서 급하게 찾으신 것을 알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던 간호사이기에 짦은 시간 면담을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보고를 받은 담당 외과장님이 들어 오셨다. 당연히 응급조치가 들어가면서 약 1시간 가량을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담당 과장님은 자상하신 분이시다. 어르신이 첫 날 입원하셨을 때, 행려환자인 줄 알면서도 친절함은 물론이거니와 자상하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주신 분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에 성공적인 수술을 하고 난 뒤에 며 칠 지난 뒤, 또 다시 십이지장에 문제가 생겨 어르신의 배에서 피가 하루에 몇 리터씩 쏟아져 나올때는 추석 연휴도 제쳐두고 병원으로 출근하셔서 환자를 살피고 체크하셨던 외과의사였다.
그리고 며 칠후 상태가 악화되어 2차 수술을 하시고 오늘 갑자기 수술한 십이지장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맥박은 150까지 치솟자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사 제쳐놓고 출근하신 것이다.
그렇게 환자를 응급처치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의사와의 면담시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수술을 할 수 밖에는..."
"그러나 어르신의 체력이 워낙 저하되어 있는 상태여서 수술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의 표정이 난감해 하시는 것 같았다.
의사와 대화를 하는 동안 나름대로 지금의 상태가 정리되는 듯 하였다. '수술한 부위는 이상이 없을 듯한데, 다른 부위에서 또 피가 나오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수술은 불가피하다는 것.
그리고 어르신을 만나는 면회시간.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눈망울에는 이미 生에 대한 미련을 접은 듯, 삶을 정리하시는 듯한 마음이 전해진다.
"내가 죄가 많어. 오전도사님은 신앙을 넘어 인간적으로 좋아요. 꼭 보고 싶어 연락해 달라고 참 많이 부탁을 했어. 감사해요..."
단어가 연결이 안되고 짧게 끊어지는 표현 속에 인생의 회한과 아쉬움과 미련이 베어 있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 힘들어. 그래서 전화해 달라고 참 많이 부탁했어. 그래서 그런지 오전도사님도 오시고, 좋으신 의사선생님도 쉬는날 오신 것 같아. 고마워!"
"예. 그런 소리 마세요.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지금까지 잘 견디셨잖아요."
"하느님께 기도했어. 나 처럼 병상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세상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되게 해 주세요. 가난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렇게 10분여를 대화하고 기도해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오늘밤을 무사히 넘기시면 앞으로 15년은 건강하게 사실 수 있는데, 희망을 놓지 마세요.' 병실을 나오면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쉼터로 돌아 왔다.
돌아오는 시간 식당 안에 텔레비젼에서는 기아가 9회말 역전 솔로 홈런을 날리는 순간, 기아의 선수들과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가을 밤이 깊어가는 제기동 도심의 밤거리는 쌀쌀한 날씨 만큼이나 을씨년 스럽다.
그리고 저녁 8시 30분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재수술이 잡혔단다.
벌써 3차수술이고 일주일 사이에 2차수술이 잡힌 것이다.
근무시간에 근무지 이탈하는 것이지만, 밤 11시에 병원에 다시 갈 것이다.
이대쪽 어르신 '부디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하느님 어르신이 체력이 약화되었지만 수술을 잘 받으실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노숙인 쉼터의 한쪽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가을 밤 찬공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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