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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복지의 지난 10년과 나의 역할 [200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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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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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31

오범석

 

여름이 더위를 먹었다고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서 일까. 갑자기 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열대야로 우리를 더위 먹이는 밤이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두번 돌아오는 숙직 서는날. 숙직을 선다고 해도 다음 날 쉬지도 못할뿐 아니라 산적한 일과를 평소와 같이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수행해야 하는 고된 삶을 산지도 벌써 9년째다. 그런데 우리 법인에는 나보다 6년을 더 그 미친 일과를 반복하는 선배가 있으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을 수도 없고. 날마다 지쳐가는 삶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렇게 여름 밤 노숙인 쉼터는 조용히 더위에 익어가고 있다. 

사실 노숙인 쉼터의 근무자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근로자임을 포기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라고 하지만, 국가는 사람들의 박애주의적인 시각 덕분에 적은 예산을 가지고도 우리와 같은 이들을 마구 부려 먹는다.

 

노숙인 쉼터의 24시간 맞교대 근무 형태는 거의 살인적인 근무여건일뿐 아니라 가끔 쉼터 아저씨들이 힘들게 하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또 다시 긴 상담이 마지막 남겨 놓은 체력을 고갈 시키기 일수다.

종사자의 처우가 이미 근로자이길 포기할 만큼 열악한데, 입소인의 생활여건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오늘도 10시에 모두 집에 들어오셨는지 확인하기 위해 윗층에 올라갔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데 마루 창문을 모두 닫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왜! 문을 닫고 계세요?"하고 아직 취침에 들지 않으신 아저씨들에게 물었더니, 옆집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우리집이 노숙인쉼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될까봐 문을 닫고 있다고 하신다.

그래서 하도 기가 막혀서 '아니 얼마나 가까이 있길래 싶어' 창문을 열어 보았다가 나도 아무 말 못하고 살며시 문을 닫고 말았다.

옆집들은 모두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을 뿐 아니라 집도 너무 가까이 맞 닿아 있었다.

낮에는 그래도 이격거리가 되어 보였던 집들인데, 깜깜한 밤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문을 열어놓으니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웃들이 노숙인인 것을 혹시나 알게되면 이 곳에서도 쫓겨날까봐  열대야에 시달리는 이 밤에도 문을 꼭꼭 닫고 잠을 자야하는 노숙인 쉼터의 현실이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한 아저씨들의 애환에 서글픔을 넘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다. 

나는 '참 착한 아저씨들이다.' 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등을 돌려 사무실이 있는 방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9년이란 세월은  나름대로 길다면 긴 세월이 아닌가? 내 30대의 절반을 노숙인문제와 함께했는데, 지금 지쳐서 숨도 쉬기 힘든 사무실 한 켠에서 푸념만 하고 있기에는 지난 세월이 안타깝지 않은가? 

 

이런 독백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난 2002년 9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이었던 시절 노숙인복지를 '소모적 복지'라는 부정적 기조 아래 사실상 노숙인쉼터의 통폐합 및 폐쇄라는 조치로  IMF때 노숙인 문제가 사회적문제로 이슈화된 이래 110개가 넘었던 쉼터를 50개 이하로 축소시키는 시련을 겪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때 나도 처음 3개월간 실직자가 되어 결국 일자리를 얻은 곳이 작은 잡지사였다.

그리고 1년 후에 다시 홈리스복지에 뛰어 들었지만, 2005년 분권교부세를 통한 복지사업 전반을 중앙부처인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면서 지금까지 노숙인 복지사업은 파편화되어 일관성을 잃고 사업과 실적 위주의 운영을 하며 오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감세정책속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감소폭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2010년부터 지방자치예산을 일반교부세로 지원하겠다고  작년에 보도자료를 내면서 그나마 충분하지 않았던 복지예산마저 일반교부세로 전환되어 타예산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점차 높이고 있는 것이 지금 현장에서 근무를 서면서도 나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이유이다.  

 

더욱 당혹스런 것은 노숙인복지정책도 발전적 개선안 없이 지금처럼 갈 확율이 점차 커진다는데 우려감을 감출 수 없다. 

민간에서 자발적 참여가 한 몫을 하여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나름대로 주장하여 최소한의 토대를 만들어오던 상황에 찬물을 끼얻는 것과 같은 우려스런 정책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것 또한 우려감을 갖게 하는 이유이다.  

비단 정책적 기조뿐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홈리스(Homeless)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냉소적이라는데 안타까움은 차치하더라도, 국민적 합의가 아직 조성되지 못했다고 해서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이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마져 져버린다면 생존경쟁에서 탈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호 받을 수 있는 길은 더욱 막막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이다.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의 논리에 의해 계급화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최소한 대의 민주주의 속에서 국민으로써 보호 받아야 하고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정책(manifesto)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열대야의 한여름 밤에 꼭꼭 닫은 집안에서 더위와 씨름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같이 용역일이다, 공공근로다, 바쁘게 일터로 향해 또 하루를 땀흘려가며 일할 아저씨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침을여는집 쉼터가 하루 빨리 재기를 꿈꾸는 수많은 노숙인들에게 쾌적하고 인간미 넘치며  퇴근 후에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집'(alternative home)과 같은 공간을 하루 빨리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종사자의 책무이리라.

어차피 국가에서 그런 인간다운 재기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리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할수도 없는 마당에 노숙인이 거쳐가는 쉼터이기는 하지만, 보다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는 쉼터를 재건하는 것은 단순한 쉼터 늘리기가 아니라 자활을 넘어 자활공동체를 지향하는 삶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제 나와 법인의 동료들과 나눔과미래에 희망과 기대를 거는 많은 회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향후 아름다운 쉼터를 직접 우리 손으로 지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우리 함께 만들어 가자고 힘차게 외쳐본다.

 

"쉿!! 조용히 하세요. 민원생기면 어쩌려고."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