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보다 힘든 외로움 [20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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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57본문
2009.5.9
오범석
에피소드1
법인 사무국의 하루는 비영리단체에서도 활동하고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시간은 늘 행정업무의 연속이며, 산적한 현안처리에 급급하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에피소드2
노숙인쉼터의 입소인은 서글프다. 인간적인 대화를 나눌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참 오랜 시간동안 뜸을 들여 이제 친해졌다 싶으면, 소리 없이 사라진다. 사라진다는 의미는 쉼터에서 퇴소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남은 빈 자리는 쓸쓸하다.
또 원칙에 의해 퇴소결정을 내린 쉼터 관리자들에게 불만도 생긴다. " 함께 마음을 터놓지도 않으면서 함께 마음을 터놓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은 이미 가난의 바닥까지 맛 본 사람들에게는 가난보다 더 힘든 고통이다."
에피소드3
지역주민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발신자가 누군지 모르게 익명으로 보냈다.
제목: 아시나요?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눈을 뜨면 사무치는 외로움....
깊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할지....
매일 지독히 아픈 그리움 속에 가슴 텅빈채 살아야 하는일....
불 가운데서 모든것을 다 잃고 몸만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
무인도에 표류 되었는데 구조 되어도 딱히 갈곳이 없는 사람....
원하지 않았던 수도자의 삶에서 이겨 내야할 많은 문제들....
아시나요?
이렇게 묻는 저도 사실 전도사님의 마음과 문제를 조금
이나마 알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마음속 깊이 감찰 하시고 답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큰 축복 입니다.
늘 사랑을 베풀고 베풀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에피소드4
암투병으로 그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유치원 나이의 두 남매를 키우며, 아이들을 주중에는 24시간 어리이집에 위탁하며 하염없이 우는 엄마. 그리고 피눈물나게 죽음과 싸우며 자녀들을 지켜내기 위해 소아마비의 장애를 이끌고 생계를 위해 풀빵장사를 하는 어느 엄마의 마지막 절규와 같은 삶
시놉시스
(1) 등장인물 : 1.사회복지사, 2.노숙인쉼터입소인, 3.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추정되는 익명
의 지역주민, 4.mbc tv 아름다운동행의 풀빵엄마
(2) 주제 : 외로움
(3) 글쓴이의 의도 : 외로움의 고통은 가난의 고통보다 크다는 것을 하루동안 경험한 일상의 업무와 상담과 전자메일을 통한 주민의 심경고백을 통해 연관성을 찾는다.
(4) 줄거리: 비영리단체의 사무국장이 하루종일 행정 및 회계업무, 기획업무에 시달리며 사람과의 진실한 만남없이 사회복지현장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를 느끼다가 숙직근무를 서면서 한 사람의 인간적인 고백을 듣고, 또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삶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사람사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외로움, 즉 소통의 단절이 가져다 주는 인간의 아픔을 경험하고 나서, 숙직을 서면서 확인한 E-mail. 익명의 지역주민으로부터 배달된 한 통의 편지를 읽으면서 느낀 이야기와 mbc tv 아름다운동행에 방영된 이야기를 보고 개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이 미약한 한부모가정이 겪는 피눈물나는 삶의 고통을 잠시시청하며 느낀 이야기이다.
네 사람 모두 처해 있는 상황과 처지와 환경은 다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겪게되는 가난보다 더 고통스런 외로움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시간인 것이다.
본문
(생략)
에필로그
한 인간에게 관심을 갇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몸서리치게 가난해서 피눈물을 쏟아가며 자녀들을 키워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가난해서 병원비가 없어 가족을 치료할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굴러가며 안타까워해본 경험도 없다.
그리고 외로움 때문에 고통당하는 우울증 환자나 혹은 누구도 내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소외로 인해 외로움의 고통을 당해본 일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일까 고통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면 나는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때면 내담자도 행복해하고, 나도 곧 행복해진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삶의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서로에게 그 순간만큼은 친구가 있다는 안도감으로 행복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행복하며, 인간미가 있어서 행복해진다.
오늘도 쉼터 아저씨와 긴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한 마을의 이장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책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그 분 말의 요지는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마을을 이해할 수 없고, 더 큰일은 당연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최근 소개된 책 중에 존 엘링턴이 저술한 〈세상을 바꾸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이란 책이 얼마전 소개되었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한 가지 놓치는 것이 있는데, 그 고집스러울 정도로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이 비록 세상을 몇 발자국 진일보시킬수는 있을지 몰라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현실주의자들이 세상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무엇이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못한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 여기서 논할 계제는 아니다.
아무튼 이 책에서 처럼 이미 우리 사회도 사회복지계에서는 '퓨전일자리사업'이 각광 받고 있다. 그것이 사회적 기업이다.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용어일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대안적 모델로서의 기업모델로 추앙받고 있는 복지운동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조명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 안전망으로써 최소한의 주거권을 지켜내는 노숙인쉼터에서 조차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노숙인쉼터들도 자활이라는 목표와 저축증대라는 목표를 위해 쉼터거주 노숙인을 다시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국제적 경제위기와 340만명에 달하는 장기 실업자가 사회문제가 되어 있고, 청년실업이 노동시장에 시한폭탄이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구직난에 몸살을 앓고 있어서 청년,장기실직자 일자리 만들기 등의 다양한 구직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에 취약한 노숙인에게 자활과 저축이라는 잣대를 통해 쉼터에서 실적위주로 평가한다면 쉼터들로 하여금 노숙인을 장기적으로 보호하고 변화시키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오히려 평가를 위해 자활과 저축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노숙인이 일할 만한 일자리는 있는가?
대부분 건설일용직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던 노숙인의 특징으로 볼 때, 건설경기의 불황은 대부분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그 밖에 일반구직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보호된 일자리, 공공근로와 같은 일시적이고 소모적이고, 한시적인 일자리를 마련하여 자활을 하라고 한다.
애시당초 그것은 자활이 목적이 아닌 임시방편의 구직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와 일명 자활쉼터들은 갖가지 이유와 사례와 근거와 논리를 들어 그것을 실적화하여 평가한다.
쉼터는 에필로그 2에서 쉼터입소인이 소통의 부재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는 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존재 목적이어야 한다. 때로는 목표가 본연의 취지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지금 노숙인쉼터의 자활드라이브이다. 그렇다고 자활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반대 논리를 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문제는 '쉼터 존립의 본질이 무엇인가?'이며, 우선순의의 문제이다.
쉼터는 노숙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해하며, 수많은 삶의 상처를 통해 생겨난 멘탈의 문제와 상처를 싸매어줌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것에 그 시작점을 두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많은 노숙인쉼터들은 이제 자활과 저축의 목적지향주의적 실적주의를 약간 늦추어 실시하고 더 중요한 입소인에게 관심을 쏟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노숙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쉼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상담 및 다양한 서비스의 수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쉼터는 일개 종교단체와 개인법인들의 소유가 아니다. 국민의 권리를 수혜 받을 수 있도록 설치된 사회복지시설인 것이다.
이제는 입소인들이 쉼터 생활에서의 소외로 인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한 풍토가 정비된 후에야 자활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목적설계가 가능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 현장의 종사자가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과 쉼터 생활자가 거주생활시설에서 소통의 단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 우리사회에 소외계층인 지역주민이 함께 얘기를 나눌수도 없고 그늘이 되어 줄만한 대상도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과 장애를 가지고 투병생할을 하며 홀로 생계을 위해 풀빵장사를 하면서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 집에 아이들 둘을 맡겨 놓은 엄마의 심정. 그리고 어쩌면 멀지 않은 시간에 죽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없는 세상에 더 이상 아이들의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절박한 엄마의 심정은 우리 사회가 고독과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단면이다. 오늘 나는 하루일과 속에서 만났던 분들 앞에서 죄인이었다.
너무 가진 것이 많았고 그 수없이 많은 아픔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함께 울어줄 수 없음에 죄인이었다.
그래서 에피소드3의 주인공이 말하듯이 외로움은 가난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며, 이 경험은 경제적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어쩌면 평범한 진실을 몰랐기 때문에 죄인이었다.
외로움에 힘들어 하는 모든 이들이 내일은 함께 얘기 나눌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