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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주거복지센터] 나의 동네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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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9-06-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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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구 어르신은 배우를 닮으셨습니다. 70대 어르신이신데도 키도 훌쩍 크십니다. 상담하면서 바라본 어르신의 눈은 양쪽 눈 모두 검은자위 옆 흰자위가 붉게 충혈이 돼있고 살짝 튀어나와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했지만 굳이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어르신은 어떻게 하면 당신이 공공임대주택을 입주할 수 있느냐며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번듯한 사업체의 사장님이었던 엄진구 어르신은 IMF 때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못해 사업은 부도나고 가족관계는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폐업한 미용실 한 켠에서 살고 있고 그 전에는 고시원에 계셨습니다. 키 큰 할아버지에게 한 평 반 좁디좁은 고시원은 생활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고시원에서 공황장애를 얻고 힘들어하던 중 아는 지인이 본인이 하던 미용실이 폐업을 하니 그 곳에서 월세만 내고 살겠느냐 해서, 고시원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 미용실로 이사하신지 이제 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미용실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가 25만원입니다. 지인과 전전대를 맺어 보증금은 지인이 처음 계약할 때 낸 지인의 돈이고 엄진구 어르신은 다달이 월세 25만원을 지인에게 납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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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어르신이 주무시는 침상, 시멘트바닥 위에 전기장판만 덩그라니 올라와있다.

 

어르신의 눈에 튀어나온, 붉게 충혈된 흰자위는 혹이 난 것입니다. 이 혹이 검은 자위를 덮게 되면 그대로 실명하게 됩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수술을 종용합니다. 그래서 눈 수술비 마련을 위해 스포츠센터 청소일을 하다가 근로소득이 잡혀 생계비가 삭감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포츠센터에서 허리굽혀 청소일을 하다가 몇 년 전 교통사고 난 허리가 더 안좋아져 척추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르신 표현으로는 허리 통증이 엄청나서 한달에 한두어번 비급여항목의 주사를 맞아야 겨우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집의 월세는 25만원, 주사 한 번 맞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0만원, 그리고 매일매일 아침마다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습니다. 의료급여1종이어도 병원은 갈때마다 돈이 들어갑니다.  허리가 이렇게 아프기 전에는 들어가지 않던 비용 때문에 어르신은 최근 월세를 여러 달 밀리셨습니다. 그리고 월세가 밀리자 지인은 본인의 보증금을 빼겠다며 어르신보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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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이 없는 어르신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지는 고시원 또는 쪽방입니다. 

엄진구 어르신처럼 주택이 아닌, 비주택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이 신청할 수 있는 임대주택 제도가 있습니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인데요, 미용실에 거주하시는 어르신은 이 제도를 통해 임대주택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종로구에는 매입임대주택 물량이 없는데다, 주택 자체가 적어 공사에서 전세금을 빌려주는 전세임대주택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로구 주민들은 매입/전세임대주택에 선정되면 그동안 살아왔던 종로구를 떠나 인근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종로구 안에서 집을 찾다찾다 결국은 임대주택을 포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어르신이 계시는 미용실은 지금도 지인이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 머리를 해주고 있어 미용실 안 가득 파마액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미용실 한 켠에 있는 수도시설에서 겨우 세수와 양치만, 샤워는  어르신의 건강이 안 좋은 게 이 냄새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임대주택 입주를 권하였지만 어르신은 지금 살고 있는 익숙한 동네가 좋으시다며 밀린 월세만 해결할 수 있다면 지금 계시는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 하십니다. 

살고 있는 동네에 공공임대주택이 있다면 지금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거주하겠다 하실까요? 내가 살던 동네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종로구에서도 꿈꾸어봅니다.

 

종로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 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