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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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3:33본문
독립투쟁 당시 구즈만과 함께 게릴라 부대 최고 지도자였던 동티모르 루악 대통령, 시골 터미널 같이 작고 소박한 공항,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닷가, 재래시장과 사람들.
4~5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간 느낌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군이 도로만 빼고 다 파괴해버렸다는 티모르 친구의 이야기가 실감이 났습니다. 450년 포르투칼의 유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항구가 없어 바지선으로 먼 바다까지 나가 큰배에 실려 있는 물건을 다시 실어 와야 합니다. 우리가 보내준 책걸상과 옷, 학용품 등이 바다에 도착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배를 댈 수가 없어 내리지 못했습니다. 며칠이 더 걸릴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가장 작은 컨테이너에 실어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서 깊은 호텔이라고 마련해준 숙소는 유엔군이 사용하던 컨테이너로 지어진 곳이었습니다. 호주 친구가 주인인데 위세가 대단했지요. 4일 묵기로 했는데 이튿 날부터 4일치 숙박비를 다 내라고 하고 왜 미리 받지 않았냐며 티모르의 작고 착한 여직원에게 "너 해고 해버릴거야!"라는 말을 퍼부어댔습니다.
결국 우리는 호텔을 옮겼고 여직원도 그 호텔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여직원이 우리가 옮기기 전에 자신도 자존심 상해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잘 되었다며 50달러가 없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며 독학으로 영어 공부한 이야기 등 살아온 내력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조금 잘산다고 교만하게 구는 못된 녀석의 갑질을 목격한거지요.
리퀴샤라는 지역으로 가서 300명의 주민이 몰살 당한 교회당과 폭격과 총질로 파괴된 터에 세위진 새로운 학교, 1700여 학생이 열심히 축구하고 공부하는 큰 학교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9년을 한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합니다.
도로도 이제 건설하고 있고, 공항도 넓힐 계획(!)이라고 하고 항구도 만들어야 하고, 배도 수리해야 하고(대통령이 타는 배도 고장난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움직이지 못한다네요), 학교도 지어야 하고, 식품 공장도 필요하고, 농사 짓는데 필요한 수로도 만들어야 하고, 저수지, 댐도 건설해야 하고. . .
책걸상 900셋트 지원이 교육 기자재 지원 규모로는 역대 가장 큰 규모라며 국가적 환영행사로 준비했는데 우리가 도착하는 날 수상과 내각이 사퇴해서 정부가 일시적 공백 상태라 환영식은 못했지만 대통령을 비롯 장관과 정부 각 부처 책임자들, 기자들도 한결 같이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도움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보내주었다며 교육을 위해, 자신들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도와달라는 말을 여러번 했습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무장투쟁을 하며 가족과 친지를 잃은 많은 게릴라 전사들이 독립 후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치로 가지 않고 정글과 시골로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희망이 보이지요?
450년이나 다스린 미안함 때문인지 포르투칼이 동티모르인들에게는 시민권을 무상으로 발급해준다고 합니다. 그 덕에 3만 명의 동티모르인들이 유럽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이 송금하는 돈이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영아 사망률 1위, 말라리아 창궐 등의 의료 문제는 쿠바 의료진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해결했고 500명의 학생들이 쿠바에서 공부하고 있답니다.
국가간 협약에 의하여 우리나라에도 노동자 신분으로 1400여 명의 동티모르인들이 일하고 있는데 거의 대다수가 멸치잡이를 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이 온순하니 주로 그쪽으로 배치하는 모양입니다. 다양한 기술을 배워갈 수 있도록 조정해야지요. 호주에는 100명, 인도네시아에는 1만 명이 나가 있답니다.
석유와 가스가 풍부하지만 호주와 미국이 관리하고 있지요. 정제시설은 다 호주에 있고 호주의 채굴/정제회사가 이익금의 90퍼센트를 돌려준다는 협약이 있지만 이익금 산정이야 엿장사 마음이지요. 모든 결제는 미국 달러로 하고 재정은 그나마 미국 은행에 보관되어 있어서 30퍼센트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답니다.
아이들 교육 시설과 장비, 급식 체계, 숙박시설, 빵과 쨈 공장, 어묵 공장, 각종 장비 수리 시설, 하수도 정비, 농업 용수와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관개시설 등등.
참 많은, 기초적으로 필요한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나라를, 사회를 꿈꾸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밑으로부터, 주민들과 함께하는 참여와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고유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양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준 여행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의 우리 사회, 아니 불과 4~50년 전 우리들의 모습, 우리 선배 세대들의 땀과 헌신, 내전을 치뤄야 했고 세계 여러 나라의 가장 험악했던 일터와 전장터에 몸을 팔아야 했던 굴욕, 그를 이겨내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긍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동티모르에는 서울, 해운대, 경포대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지만 '갈수록, 볼수록 정이 든다!'는 김현대 기자의 말처럼 정이 담뿍 드는 나라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겠지만 좋은 일들로 계속 만날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아픔과 상처도 많은 사람들이지만 자부심과 희망으로, 무엇보다 독실한 믿음과 신실한 기도로 모든 어려움을 떨쳐내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동티모르의 벗들에게 격려를 보내주시고 축복을 기원해 주십시오!!
티모르 커피가 아주 향긋하고 맛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