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시선] 돈의동 쪽방촌 방문기
페이지 정보
나눔과미래 16-07-14 15:37본문
어느 지역이나 쪽방촌은 열악하다. 더럽고, 비좁고, 낡았고, 어둡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 모든 열악함보다 내 눈에 충격적으로 들어왔던 것은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일반적인 건물이라면 담이 있어야 할 외벽에 낡은 미닫이문이 있고, 그 문 사이로 낮잠을 자는 모습이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한 평 남짓이나 될까, 이 방이 그가 사는 집의 전부다. 세탁기와 냉장고는 방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밖에 내어놓고 쓰는데, 그마저도 모두 자물쇠가 잠겨 있다. 남녀구분도 안 되어 있는 작디작은 공용 화장실 입구에는 '세면, 샤워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디서 씻을 수 있을까? 이런 작은 쪽방이 수없이 붙어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낡아 지붕이 내려앉고 있거나 기둥이 뒤틀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이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어떻게 될까, 한여름이 되면 어떻게 될까, 한파가 몰아닥치면 어떻게 될까, 세를 내지 못해 여기에서마저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탑골공원과 종묘 근처에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며 이천오백 원짜리 밥을 먹고 이천 원짜리 티셔츠를 사는 냄새나고 꾀죄죄한 사람들의 누군가는 쉴만한 방도, 밥을 해 먹을 주방도, 작은 가구 하나도 없어 그저 길거리에서 하루를 보내는 쪽방촌 사람들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일을 안 하니까 가난한 게 당연하지", "돈 벌어서 맨날 술이나 먹으니까 저렇게 살 수밖에", "저렇게 사느니 그냥 죽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두 눈으로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먹은 게 없어 힘을 못 쓴다. 제대로 씻을 수가 없어 항상 질병을 달고 다닌다. 덥거나 춥거나 아픈 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세를 내지 못하면 그나마도 이 열악한 방에서조차 쓸 수 없어 밖에서 자야 하는 사람들이다. 애당초 개인의 능력으로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경쟁에서 도태됐으니 뭐 어쩌겠냐”는 파충류 같은 생각을 해왔던 것인데, 약육강식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적 대세인 진화론적 관점 속에서 보면 내가 했던 생각은 딱히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이천만원이 넘는 학자금이 있고, 2년이 지나면 다른 집을 구해야 하는 전세임대주택에 살고 있으며, 헬조선 최전방에서 백만원 남짓 받으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흙수저가 아닌가. 이런 내가 누군가를 돕지 않고,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답답한 이유는 본디 인간 세상은 돈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곳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도, 힘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은 꽃 한 송이를 선물하거나 조촐한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주 적은 돈으로도 할 수 있다. 또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실행해보는 것도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내게 없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선으로, 언어로, 마음으로 행했던 폭력들은 그들에 대한 무지와 사랑 없음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들의 삶의 필요를 가늠하고 채워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들에게 사죄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쪽방촌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 품었던 비판적인 마음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겪었던 일들을 통해 앞으로 도시재생 분야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일해야 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