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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죽음보다 삶이 낫다 [200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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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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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2

그래도 죽음보다 삶이 낫다

  이주원

 

요즈음 생활고․성적 등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힘이 되어 줄 사람이 한명만 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아침을여는집>에서 생활하는 입소 홈리스들은 누구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갔던 사람들이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세상을 뜨려고 했다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홈리스가 되기까지 겪었을 절망과 고통은 몇 마디 말로는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아닌 절망뿐인 삶을 선택한 홈리스들은 대단한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이 곳까지 이르게 된 홈리스들 가운데 몇몇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 

 

먼저, 2001년 12월 실무자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던 기억이 생생한 김상진씨.

 

그는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강박증 때문에 항상 불안해했다. 자주 멍텅구리배에서 매질을 당하는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떴다. 마음을 여는 듯 하면서도 이내 굳은 얼굴이 되곤 했다. 

김씨의 지나온 삶을 듣고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었다. 그는 고2때 인신매매되어 멍텅구리 배로 팔려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폭행으로 죽은 동료가 바다로 던져지는 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정신장애를 겪게 되었다. 

 

심한 충격우여곡절 끝에 뭍으로 나왔지만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을 찾지 못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기억력을 상실하고 거리를 배회하며 불안한 생활을 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가족을 찾았지만 심한 충격으로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김씨는 가출이 이어졌다.  

 

기억력이 약화되어 거리를 헤매 다니던 김씨는 <아침을여는집>에 입소하여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안정되어 갔다. 어렵게 가족과 연락이 닿고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김씨는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  

 

김씨가 가장 어려워하던 것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었다. 끝내 그와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그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제고 한번 그를 만나 마주보며 질리도록 이야기나 나눴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오랜 시간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진 않았지만 긴 여운을 남겼던 박강수씨. 

 

박씨를 처음 만났던 날 무척 놀랐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펼쳐 보인 손목은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자살 흔적인 자상이 남아 있었다. 박씨는 하루 한 끼를 먹기 위해 남들의 몇 배를 노력해야만 했다. 유복자로 태어나서 배고픔 때문에 집을 나왔고 거리를 전전하다가 결핵까지 걸렸다고 했다. 결핵으로 더 이상 날품을 팔수도 없었고 중국집 배달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씨는 우울증과 자해의 위험 때문에 입원치료를 받았다. 오랜 삶의 고통은 그를 환자로 만들었다. 몸이 약한 박씨는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직업능력을 점점 상실해 국고 보조금으로 생활해 나가고 있었다. 쉼터에 오기 전에 쪽방에서 생활했던 박씨는 밥값이 없어 제때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입원 치료 뒤 <아침을여는집>에서 생활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고 싶었지만 박씨는 거리를 선택했다. 어쩌면 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혼자 살아가는 법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박씨가 더 이상 배고픔을 걱정하며 살아 갈 수 있을지.

 

삶에 지쳐 오게 되는 이 곳 <아침을여는집>은 힘든 삶을 살아온 홈리스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3~4년을 살다가 떠나간다. 떠나는 이들과의 헤어짐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더러는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노숙자’이라는 낙인을 떼지 못한 채 거리나 쉼터, 쪽방 등을 전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홈리스들은 장애를 갖고 있거나 배우지 못해 취직을 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결국 그들이 자활을 해서 집도 마련하고 결혼도 하고 직장도 성실히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꿈’에 가깝다. 우리사회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최소한의 ‘의․식․주’를 모든 사람이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도 꿈이라면 이 꿈을 모든 이의 가슴에 새기고 싶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