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필요한 것 [2007.7.31]
페이지 정보
나눔과미래 16-07-14 16:05본문
2007.7.31
그들에게 필요한 것
이제원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60-70년대의 ‘보릿고개’와 ‘넝마주이’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빈곤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어려움을 직접 겪은 사람에게 그 어려움은 절대로 부끄럽지 않은, 어찌 보면 아련한 추억일지도 모르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노숙인 문제는 과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차이일 것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보릿고개’와 ‘넝마주이’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길을 지나온 지금은, 다수의 부유층(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부유층이 아닌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계층을 말한다.)과 노숙인을 포함한 소수의 빈곤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회구조가 이렇게 변한 이후 다수의 부유층은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들이 현재 빈곤하다는 결과를 보고 그들의 게으름과 무지함을 탓하게 된 것이다.
노숙인을 보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숙의 원인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그들의 게으름과 무능함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하지만 노숙인 문제가 IMF 이후 우리에게 다가온 점을 생각해 볼 때 그 원인을 개인적 문제로 보기 보다는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는 것이 보다 옳을 듯하다. 즉 노숙인은 국가 경제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 경기가 위축되고 실업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약자이자 피해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두레, 품앗이 등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키워 왔다. 집에는 담이 없었고, 이웃에 대한 배려와 지나가는 길손까지도 정성껏 대접하는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었다. 경주지방의 최부자 집안의 ‘재산은 만석을 넘지 못하게 하고 넘은 것은 사회에 환원하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은 우리 조상의 슬기로움이자, 상생을 실천하는 예라 할 것이다.
한 번의 술값으로도 부족할 지 모르는 3만원이면 아프리카의 12명의 소년들이 1년동안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자동차를 사는 것도, 넓은 집을 마련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삶의 희망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배려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