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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 숟가락 그리고 포크, 나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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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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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12

'맨손, 숟가락 그리고 포크, 나이프'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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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9> 맨손, 숟가락 그리고 포크, 나이프

 

 

 

영국에서 생활할 때입니다. 기숙사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탁에 포크와 나이프가 주욱 놓여져 있었습니다. 많을 때는 약 80여명이 같이 먹는 식당이라 꽤 큰 식당이었습니다. 줄을 서서 음식을 받고 식탁에 앉아 기도를 하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일제히 포크와 나이프를 드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몇 십 명이 동시에 찌르고 베고 잘라서 꿀꺽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이놈들 참 지독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서너 살 먹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영국 친구들에게 "당신들 참 독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찌르고 자르고 베는 무기로 식사를 하니 어찌 맨손으로 식사하는 인도 사람들, 아프리카 사람들이 당해낼 수 있었겠느냐?"고 하니 "그거 새로운 신학입니다." 하면서 껄껄 웃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생활하던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친구들은 맨손으로 밥을 먹고 싶은데 소위 젠틀맨의 나라에서 젠틀맨들에게 흉이 될까봐 어설픈 모습으로 억지로 꾸역꾸역 넘기는 모습이 참 안돼 보였습니다.

 

서로 친해진 후 일 주일이면 4일은 제 방에 붙어있는 주방에서 그들과 함께 인도, 파키스탄 음식들, 라면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냄새도 독하고 향도 강해서 또 조리하는 과정에서 연기가 많이 나기 때문에 기숙사내의 화재경보기가 자주 삑삑거렸지만 물수건도 갖다 대고 전원을 내려보기도 하고 급기야는 화재경보기의 센서를 제거해 버리면서까지 낄낄거리면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었습니다. 당연히 방바닥에 신문지 깔아놓고 둘러앉아 맨손으로 먹었지요. 맨손으로 라면 드셔 보셨습니까? 예술입니다. 그 친구들 따라서 인도의 치킨커리도 맨손으로 먹어보고 우리밥도 먹어 봤습니다. 정말 다르더군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느낌이 이상했지만 자꾸 해보면 할수록 자연스럽고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정말 좋았습니다. 

 

 

 

손으로 먼저 먹고 입으로 먹고 두 번 먹는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서로 유쾌하게 떠들면서 영국 사람들 흉도 보면서 맨손끼리의 진한 우정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음식 먹는 습관에 담겨있는 문화, 역사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지고 느끼면서 평화로운 자세로,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나누는 사람들이 신발을 신은 채 언제든 뛰어 나갈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칼(나이프)과 삼지창(포크)으로 피가 뚝뚝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푹푹 찔러가면서 먹는 그들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겠으며 조금 과장해서 어렸을 때부터 무기를 들고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는 그들의 심성이 어떻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둥근 숟가락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배우는 데도 한참 걸리고 불편하기까지 한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하나하나 살펴가며 음식을 먹는 우리들 또한 무력으로 그들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밥 먹으면서 별 쓰잘 데 없는 생각을 한다고 하겠지만 인도, 아프리카,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온 친구들의 초라하고 주눅 든 모습, 그러나 한편 자존심 강하고 자부심 강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식민지를 경영하는 제국과 식민지 백성의 모습이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과 맨손으로 오버랩되고는 하였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몇 년만 더 다스렸다면 아마도 영국이 인도의 식민지가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칼과 삼지창 무기는 순간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제압할 수는 있지만 마음과 영혼을 다스릴 수 없다는 진리를 표현한 기가 막힌 말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사실이기도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그 바람에 꽃들이 순간적으로 넘어지고 다치기는 하여도 결국은 비와 바람과 작열하는 태양의 빛까지도 그 작은 생명 안으로 삼키고 삼켜, 온 들판을 푸르게 붉게 피워내는 것이 생명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약해 보이지만 강하고, 진 것 같지만 결국은 이기는 것이 십자가의 진리인 것처럼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세상을 구원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지금 미국이 온갖 최첨단 무기로 이라크에 화염을 쏟아 붓고 있지만 역사상 강성했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제국들은 언제나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여 왔고 최강의 군대라고 자부하여 왔습니다. 세상의 어떤 먹을거리도 내 몸과 하나이고 또 내 몸이 음식의 일부로 되돌아간다는 맨손의 진리가, 정성스레 음식을 들어올려 하늘에 고하고 하늘을 내 안에 모시는 장천하 어천하(藏天下 於天下), 둥근 숟가락의 진리가 결국은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