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몰락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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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02본문
2008.12.29
진보 몰락의 이유
이주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가 공존하는 존재이지만 이기적 유전자가 우성인 것 같다. 그래서 내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해야 남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경제가 죽을 쑤는 상황에서는 분배를 모토로 내세우는 진보세력의 집권보다 성장을 내세우는 보수세력의 집권이 더 많았고, 성장을 내세웠던 보수정권 중 일부는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처럼 대중독재의 길을 걷기도 했다.
진보진영이 맥없이 당하고 있다. 종부세는 유명무실해지고,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대운하가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우회 상장되었으며, MB악법이라 불리는 청와대발 사회개혁법안(?)을 한나라당의 수적 우위를 이용해 강행 통과시키기 위해 홍준표 원내대표는 전쟁도 불사하지 않겠다고 발언하였다. 30% 미만의 지지를 받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이토록 강한 우파적 개혁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전선조차 구축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기껏 선택한 방법이 계백 장군의 황산벌 전투를 연상시키는 국회 본회의장 점거뿐이니 너무 참담하다. 그나마 계백의 황산벌 배수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여전히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백제의 지방 귀족군벌세력의 배후지원을 믿고 선택한 전략이었다. 그에 비해 민주당이 주도하고 민주노동당이 연합하는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배수진의 지원세력은 누구인가? 힘을 갖고 지원할 세력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지난 10년 동안 민주개혁정부에 음으로, 양으로 참여해 야성을 상실한 시민사회단체는 촛불과 환경운동연합의 공금횡령사건의 후유증으로 갈팡지팡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성안의 사람들(세계적으로도 과도하고 경직된 처우)’이 되어버려 이익단체로 전락했고, 전교조는 자기 한 몸 추스르지 못한 채 보수정권의 공세에 풍전등화의 상황이 처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보정당인 진보신당은 여전히 존재감이 낮은 채 사회적 의제를 주도할 역량이 없다. 그럼, 누가 있어 폭풍처럼 몰아치는 보수정권의 반민생적, 반민주적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가?
왜, 진보진영은 이렇게 무기력해졌는가? 지난 2007 대선과 올 4월 총선 이후 진보진영의 몰락에 대한 반성과 비판들이 참 많았다. 허나 대게 하나마나한 반성과 비판들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와 서민들의 고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변화 속에서 국민들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대처하지 못했다”,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치중해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류의 하나마나한 반성과 비판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진보의 몰락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하나마나한 반성과 비판에 있지 않다. 한 단어로 압축해본다면 ‘실력’이다. 진보의 몰락원인은 실력의 부재일뿐이다. 정책 실력도, 정치 실력도, 심지어 국민과 소통하는 실력도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던 것이다. 더구나 국가경영담론의 소비자였던 진보정치인 및 시민사회단체 리더 등과 생산자였던 학자나 언론이 서로 멀리 떨어진 채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 진보학자들의 끊임없는 헛소리 행진은 담론의 소비자와 멀리 떨어진 따뜻한 온실에(대학, 국책연구소 등) 앉아서 담론 소비자의 고뇌와 대중의 현실감각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소통하지 못했다. 끝으로 진보진영은 유령이나 다름없는 신자유주의와 싸우느라 에너지를 통으로 소비하는 통에 실력의 배양은 물론 잡음 없이 간단히 할 수 있는 꽤 영양가 있는 개혁조차 무수히 놓쳐버렸다.
작금의 경제위기는 결코 진보진영에게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더구나 내공도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답은 하나다. 정치권과 지식사회가 정의하는 진보(시장과 국가, 미국과 북한에 대한 태도에 대한 선택)를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소통하려 들지 말고, 실력을 배양하여 다수 국민들의 현실 감각에 비추어, 무엇이 진보이며, 누가 진보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