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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손님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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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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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9

'손님이 손님을 맞으며'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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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7> 손님이 손님을 맞으며

 

 

 

 

예정보다 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감당해야하는 어려움도 많이 있지만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도 얻을 수 있으니 그것은 물밀듯 밀어닥치는 '손님'들이다.

 

재작년 초부터 작년 중반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우리 집을 다녀간 손님이 500여명에 이르렀다(90퍼센트는 한국에서 오시지만 전 세계에서 고르게 오셨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녀가는 수도 런던도 아니고 런던에서 고속도로로 한 시간 반을 달려야 도착하는 옥스퍼드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걸리는 인구 3만의(재작년 까지는 2만여 명 정도였다.) 작은 타운이다. 그 먼 곳 까지 찾아오겠다는 사람들의 정성을 다 헤아리다보니 결국 방과 싱크대의 문짝은 떨어져 나갔고 침대 다리는 부러지고 화장실의 변기는 깨져버렸다. 

 

세탁기의 문짝도 고장이 났고 페인트가 칠해진 벽면은 손자국과 각종 얼룩으로 범벅이 되었다. 바닥에 깔린 카펫은 몇 날 며칠을 두고 물청소를 해야 했다. 결국 그 집을 비워주고 옆 마을로 이사하는 날 집 주인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변상해주어야 했다. 그 사이에 차의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를 몇 번이나 갈아 끼워야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작년 7월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젠 웬만하면 손님을 받지 말자는 굳은 다짐을 했음에도, 그래서 실제로 많은 손님들을 잘 아는 런던과 옥스퍼드 수녀원의 게스트 하우스나 교회의 사택으로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도 안 된 사이에 벌써 200여 명 이상이 다녀갔다. 아직까지는 새로 이사한 집의 문짝도 성성하고 화장실의 변기도 깨지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대접해야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내일 당장 또 다섯 분이 오시고 다음 주에는 세분이, 다음다음 주에는 10여 명이, 결국 8월 말까지 또 줄줄이 예약이 되어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내년 6월에 오겠다며 일찌감치 예약을 걸어둔(?) 친구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우리 집을 위트니 호텔(Witney Hotel)이라고 부른다. 위트니(Witney)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행 가방을 든 손님들이 드나들고 가끔씩은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한 집에서 자고 먹고 해대니 조용하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이 곳 사람들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인 모양이다. 이웃들 중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예 호텔을 차리라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침구류나 그릇, 입맛에 맡는 음식도 부족해서 쩔쩔매기도 하고 어디로 어떻게 안내를 해드려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공항에서부터 다시 공항으로 돌아갈 때까지 서비스에 빈틈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되돌아보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계층별로, 구성별로, 목적별로 착착 입맛에 맞게 프로그램을 짜고 시간 계획과 사진 잘 찍는 방법과 동선 하나하나까지 조직해주는 프로가 되어버렸다. 영국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인 프랑스나 스페인, 아일랜드 등의 여행정보 뿐만 아니라 비행기 시간, 그들 나라에서의 기차, 숙소까지 다 예약을 해주기도하고 여행 계획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행을 해서가 아니라 책과 컴퓨터를 뒤지고 전화를 붙들고 똑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니 마치 다 다녀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해졌다) 

 

대부분의 경우 운전기사에, 가이드에 통역까지 해드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내 역할은 주로 짐 나르기와 운전, 여행지 안내, 이야기와 적당한 여흥으로 저녁시간 같이 보내기 등이고 이고 이런 세부적인 전략과 지침 마련, 여행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 준비는 자상하고 세심한 아내의 몫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들의 높은 교육열에 부응해서 아이들의 학교를 알아봐주고 대신 편지 써주고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서 부모님들이 요청하는 정보를 가급적 신속, 정확하게 알려 드리기도 한다. 

 

각종 단체나 개인이 요청하는 기관 방문과 면담 섭외도 조금 과장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해야 한다.(아, 이렇게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무슨 여행사 사장인 것만 같구나! 부디 오해 하지 마시기를!)

 

그래도, 때로는 시간에 쫒기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해져도 옛 말대로 친구들이 잊지 않고 찾아 줄 때마다 그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적과 관심사를 가진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새롭게 배우는 것도 많고 그 분들에게 내가 아는 한에서 영국에 대해 소개해주고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남을 때가 많이 있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어려운 이웃들과 살아오느라 외국에 나갈 생각을 못하다가 주위의 도움으로 처음 나온 분들이 새로운 경험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하나라도 더 못 도와드리는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기도하다.  

 

손님은 왕

 

물론 한국에서 일할 때도 늘 손님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외국인이면서 손님'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남의 나라에서 손님을 바라보고 대하는 심정은 특별하기도 하고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던 것을 그분들을 통해 고국(이 말도 여전히 어색하다.)의 생생한 소식을 접하고 그분들의 말과 행동, 관심사들을 듣고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감지하기도 한다. 찾아준 손님들과 우리문제에 대해 걱정도 하고 희망을 찾기 위해 격정적인 토론도 벌이는, 잠시나마 '주인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경험 가운데 다양한 모습의 '손님'들을 겪으면서 '역지사지'의 교훈을 성찰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소중한 기쁨중의 하나이다. 내가 '손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나는 어떤 종류의 손님이었던가? 내 이웃들에게 그리고 이곳 영국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부류의 손님인가? 

 

 

 

우리는 모두 손님이면서 주인이기도 하다. 늘 손님일 수만도 없고 늘 주인일 수만도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리라. 입장과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는 것이 약한 인간들,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이다. 상황과 경우에 따라 이익을 셈하고 손해를 따지게 된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 하라!'는 말씀을 온전히 따를 수 있는 마음과 살아가는 환경이 그렇게 넉넉하지도 녹녹하지도 않다.   

 

그러나 손님이 있다는 것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옛 어른들은 '손님이 북적일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 할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아져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땀 냄새 풍기며 기꺼이 내 집에 들어 밤이 다 새도록 인생을 논할 벗들이, 손님들이 없어진다면 아, 그 인생은 얼마나 쓸쓸 할 것인가! 

 

따라서 손님은 이 세상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아직도 내 존재가 무엇엔가 쓸모 있다는 것을 전해주는 축복과 은총의 메신저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손님은 왕'인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잊지는 말자, 손님 노릇도 한 때이고 주인 노릇도 한 때라는 것을. 순간순간 입장과 역할이 뒤바뀌며 누군가의 손님이기도하고 누군가의 주인이기도 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로 인정하고 의지하며 살아가야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네 운명이라는 것을.   

 

내일 오후에 오실 손님들, 그 분들에게서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려니, 그분들과 함께 나눌 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