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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마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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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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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다시 산마루에서'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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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6> 다시 산마루에서

 

 

 

 

모처럼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짧은 귀향이라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좀체 여유를 갖지 못하던 차에 약속 하나를 취소하고 봉천동 나눔의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헉헉대며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한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낮 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조금 높은 곳에서 숨을 고르다 저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니 온 마을을 뒤덮은 뿌연 황사가 보여 큰 숨을 들이켜기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아서서 다시 내려다보니 멀리서부터 아는 얼굴들이 보이고 음식을 전달하러 온 푸드뱅크(각종 식품을 기부 받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운동) 차량이 보입니다. 내려오는 발걸음에 저절로 힘이 붙습니다.

푸른 등나무 잎으로 휘감겨 있는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안에서, 작은 마당에서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동네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타국에서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눔’은 산동네에 나있는 산복도로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지난 20여 년을 보냈는데 모처럼 다시 와서 보니 그렇게 엉터리 같은 말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래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과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만을 고집하면서 서로에게 ‘내려와라!’, ‘올라와라!’ 강요하지 않고 조금씩 힘들게 내려가고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타협과 중도, 중용의 길(Via Media), 나에게 그 길은 산동네 중턱에 옆으로 길게 나있는 산복도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삶이 힘들고 고단하거든 산에 오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가방 하나 메고 터벅터벅 산길을 걷다 보면 비로소 혼자인 나를 돌아보며 내가 나를 생각하게 되고 중턱쯤에만 이르러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을을 천천히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정상에 이르러 숨을 고르면서 둘러보는 세상은 아래에서만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입니다. 오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지만 그 길은 또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이 되어 나타나지요.

 

  다시 산동네의 중턱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잠깐의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만 가지 표정으로 오르고 내리면서 스쳐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근원은 다 알지 못하지만 다행히 산 중턱, 허리춤에 나 있는 그 길, 위로 아래로가 아니라 나란히 서서 옆으로 걸어야하는 그 길에서 우리는 잠깐이라도 미소를 교환하고 악수를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고 한 번씩이라도 안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 산동네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이!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괴담’과 ‘배후’를 이야기하며 시끄러운 세상입니다. 눈부시게 환한 가로등들이 즐비한 도심 한 복판에서 여리고 가는 촛불이 밤마다 켜지고 있습니다. 

그 촛불들은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마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간절하게 애끓는 마음으로 촛불을 켜든 어린 학생들과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큰맘 먹고 올라간 그 길에는, 불행하게도 내려와야 할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수 십 명의 이웃들이 다녀갔고  많은 사람들과 차를 나누었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가끔씩 제 입에 떡을 넣어주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며 컨테이너 박스 한 쪽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는 아름다운 50대 ‘언니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다시 산마루, 사람들의 가슴팍에서 느끼는 이 따뜻함, 은총입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