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취에 빠진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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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00본문
2008.11.24
'자기도취에 빠진 지도자들'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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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5> 자기도취에 빠진 지도자들
수선화의 계절이 지나갔다. 종일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다가 황금빛으로 찬란하던 꽃잎들도 쪼글쪼글해진 채 어느덧 사라져가고 힘없이 늘어진 줄기들만 한 때의 영화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조각처럼 잘 생긴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려 할 일도 잊은 채 종일 물가에 엎드려 있다가 수선화(나르키소스)로 변해버렸다는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성적인 욕망을 느껴 스스로 애무하고 탐닉하는 병적인 ‘자기애(自己愛)’를 이르는 정신의학적 용어이기도하다. 성장해서도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못하는 유아기 때의 정신적 상태가 지속되거나 특정한 경험에 의해서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서버리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경험 안에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관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인 자기애는 자신을 발전시키며 타인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문제는 이런 자기애가 지나치거나 과시적일 때 생겨난다. 자신이 가진 철학이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이 아무리 충고를 하고 조언을 해도 듣지 않는다. 설령 듣는다 해도 곧바로 자신이 가진 경험의 틀과 자신만의 철학으로 해석하고 만다.
저마다 다르고 다양한 경험과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에서 세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비추인 자신의 얼굴과 '당신이 최고!'라며 추어대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곧바로 '내가 옳다!'는 자기 확신에 빠져버린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한 채 종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선화(수선화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신화일 것이다)처럼 고개를 들어 골고루 세상을 비추이는 태양을 마주하지 않는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형편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이 나 혼자만일까.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 이지만 우리나라를 새롭게 이끌어간다는 지도자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혹시 이 분들이 이런 부정적인 자기애에 기반 한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자신들이 경험한 세상을 지고지선으로 생각하면서 6,70년대식의 '나를 따르라!'는 통치방식과 일반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온갖 부정과 비리에도 '공직'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며 꿋꿋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 집안도 경력도 화려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들이 내 뱉는 말들과 일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마치 자신의 모습에 취해 양떼를 돌보는 일도 잊은 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쳐다보고 있는 나르키소스 같다는 생각이다. 나르키소스는 얼굴은 잘생겼지만 미성숙한 소년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주어진 조건은 좋았지만 그것에 사로잡혀버린, 그것도 겉모습에 붙잡혀버린 불행한 정신이었다.
지도자들의 자기도취, 그 근원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사로잡혀있는 정신적 근원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야하는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자신의 철학과 경험만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려고 하는 그들의 유아기는 어디일까. 아무래도 6,70년대의 개발독재 시절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파이가 커져야 나누어 먹을 것도 있다며 분배보다는 성장을 외치고 큰 아들이 잘 살아야 다 잘 살 수 있다며 재벌기업들에게 무한정 혜택을 주던 그 시절,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그 시절, 지도자의 호루라기 소리에 마치 연병장에 줄 서듯 온 국민이 차렷 자세로 줄을 서야했던 그 시절인 것만 같다.
화려하게, 그러나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와 커피를 직접 따라 마시는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부활한 '그 때 그 시절'의 철학과 경험 때문에 골병들어가는 서민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민들은 어찌할 것인가. 어느 사회학자가 지적한대로 강남 사람들 따라하려는 '모방 욕망' 때문에 집값을 높게 쳐준다는 사람들에게 우르르 몰려들어 투표했던 강북 아줌마들은 또한 어찌 할 것인가. 아무런 상의 없이 덜컥 미국산 소를 수입한다고 발표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용서했으니 더 이상 일본과의 과거를 잊어달라는 사람들.
거품은 꺼지게 마련이고 꽃도 시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떠날 때를 생각하면 조심스러워지고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떠나야한다는 것을 안다면, 무릇 모든 생명은 시들게 마련이고 한 점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가장 강한 것보다는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배려하게 될 것이다. 신학교 때 배운 것 중 잊히지 않는 것은 설교하거나 강연을 할 때는 청중 가운데 가장 약한 사람,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옛 성현은 자신을 물에 비추지 말고 세상 사람들의 얼굴에 비추어보라고 했다.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희로애락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된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수선화도 지고 이제는 온 들판이 유채로 화려하다. 들판의 모습이 이렇게 변해 가듯 우리네 인생도,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이제는 고개를 들어 자연의 순리대로, 뭇 생명이 어울려 사는 들판으로 나아가주기를, 사람들의 얼굴에서 지혜를 구하는 겸손한 사람들로 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