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와 달라이라마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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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6:59본문
2008.11.19
'티베트와 달라이라마를 생각하며'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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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3> 티베트와 달라이라마를 생각하며
고도 5000미터에 가까운 고원지대에 위치한 나라,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나라 티베트가 '문화 대학살(Cultural Genocide)'을 당하고 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있다.
1959년 이래 인도의 다람살라(Dharmsala)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티베트의 지도자 ― 세계는 그를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Spiritual Leader)라고 부른다 ― 달라이 라마는 중국 군대에 의한 동족의 학살을 그렇게 표현했다. Genocide(대학살)라는 말은 아프리카의 르완다나 발칸반도의 세르비아에서 일어났던 집단적인 대학살을 표현 할 때 쓰는 말이다. 다른 부족, 다른 인종, 다른 민족을 청소해내듯이 집단적으로 학살해버리는 인류에 대한 가장 잔인한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단 며칠 동안의 시위과정에서 80여 명의 동족이 살해당하는 대학살, 범죄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문화 대학살'을 멈추라는 호소와 함께 다음과 같은 짧은 몇 마디로 그의 궁극적 지향과 티베트인들의 종교와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해내었다.
"중국은 폭력으로 안정과 평화를 얻으려 하고 있지만 진정한 조화와 통합은 '마음(Heart)'에서 온다!"
"티베트인들은 보다 많은 자치를 원하고 있으며 중국과 좋은 관계를 통해 평화롭게 살고 싶다!"
"티베트는 모든 나라가 베이징 올림픽에 참여해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사태가 폭력적이며 통제 불능의 상태로 계속된다면 사퇴하겠다."
BBC 뉴스를 통해 그의 모습과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전율을 느끼고 말았다. 인도의 작은 지방 도시에서 궁벽한 망명정부를 50년 째 이끌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겸손함과 소박함, 품위에 넘쳐났다. 그리고 결코 서두르거나 강압적이지 않은 그의 태도와 표정, 한 마디 한 마디는 보통의 정치 지도자들이 내 뱉는 계산되고 가시 돋친 제스처나 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말씀'이었다. 강대국들과 정치인들과 사이비 종교인들의 입을 통해 '정의,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나부끼는 공허한 깃발들과 빈 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말씀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를 빙자한 정치인이며 폭력시위의 배후 조종자이고 중국은 티베트에 철도와 도로를 놓아주는 등 개발을 통해 근대화 시키고 있다, 시위 진압은 최루 가스와 물대포만을 사용하면서 아주 평화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발표하던 중국정부의 총리의 모습과도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대조적이었다.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 그는 티베트의 종교와 역사, 혼을 체현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지도자이자 세계인들의 영적 지도자이다. 그는 어느 기자와의 대담에서 "화나 분노는 끊임없이 폭력의 악순환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정한 세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고 마음의 평화는 용서와 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며 자신의 조국과 동족을 억압하고 학살하는 중국마저 용서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국가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종교와 일상이 하나인 역사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나라,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신비적이며 영적인 모습으로만 여겨지는 나라, 소위 문명화를 위한 현대적 개발보다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숭상하며 수 백 킬로미터를 무릎을 꿇은 채 성지를 향해 순례하는 600여 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있다. 강대국의 자원 확보와 영토 확장을 위한 탐욕적 정치적 사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류의 <오래된 미래>(노르베르 호지의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를 말살하고 학살하는 '문화 대학살'이 세상의 지붕, 티베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총과 칼이 아니라 농기구를 들고 이미 세계 최강국이 되어버린 중국에 맞서고 있는 티베트인들을 보면서,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인도의 망명정부 청사 주변에서 맨 주먹으로 '달라이 라마!'를 외치며 행진하는 그 순수한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십 년을 티베트에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부처의 가르침에 한 점의 의심이라도 가진 사람을 볼 수 없었다는 어느 서양 산악인의 고백처럼 그들의 순정한 종교적 영성을 보면서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이 절기에 내 자신과 이 세상의 평화를 고통스럽게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자신에게도 티베트는 영적이며 신비한 땅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는 하나의 판타지였으며 달라이 라마는-그가 쓴 책과 강연을 듣고 보면서-내면을 성찰하게하고 내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훌륭한 영적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컸었다. 그들의 정체성과 생명이 살해당하고 있을 하루하루의 고통과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고난은 내 의식 속에, 내 기도 가운데 거의 기억되지 않고 있었다. 중국과의 정치와 경제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서방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언론과 일부 철없는 영성 장사꾼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조작에 나도 모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20일 목요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주간이다. 예수의 체포와 죽음, 부활을 기리는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해주었듯이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례가 있는 날이다.
부활절 즈음에 달라이 라마를 생각하며
거대한 로마 제국과 식민지 관료체제와 권력화 된 종교체제에 맞서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던 예수가 비참한 죽음을 앞두고 하는 일이 고작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일이었던가? 이 중요한 순간에, 억울함과 분노에 차서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 칼을 들고 저항을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지저분한 발을 씻겨주고 닦아주며 "너희도 세상에 나가 이렇게 하여라"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찌 하라는 말인가? 제자들은 이렇게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 무릎 꿇음이,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내려놓고 가장 지저분하다는 발을 씻겨주는 그 단순한 행위가 세상을 이겨내었다. 이것이 내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부처의 자비가 이르는 가르침이자 사티아그라하(진리파악), 브라흐마차랴(자기정화), 아힌사(無傷害)에 스와라지(자치)를 결부시켜 비폭력/·비협력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간디와 13년 동안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었던 비노바 바베와 대립과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 일으켰던 기나긴 무장투쟁을 끝내고 협상을 통해 아파르트 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를 종식시킨 넬슨 만델라와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역사에 있어 3.1 운동의 정신이기도 하고 가장 작은 씨알이 한울님이라 가르쳤던 수운 최제우 선생과 다석 유영모 선생, 함석헌 선생, 문익환 목사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들 모두는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선동하는 '배후 조종자'로 모함을 받았고 옥에 갇혔으며 정신 나간 사람들로 '이미지 조작'이 되었던 분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과 정신은 지금도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에 깊이깊이 새겨져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 十日紅)'는 말처럼 제국은 사라지고 권력은 허망하지만 그들의 생애와 가르침은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의 증거가 되어주고 있다.
따라서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평화의 사람들인 티베트인들과 달라이 라마에게 부처의 자비가 실현되는 승리의 그날이 온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일 것이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것이며 그 시간이 이루어지기까지 고통 받고 죽어갈 동족에 대한 아픔 때문에 많이 힘들 것이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이 주간에라도 티베트인들과 고난 받는 전 세계 인류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낮은 자세로 엎디어 죽음의 길을 가야하는 형제자매들의 발을 씻겨주고 보듬어 안아줄 수는 없지만 거리에 나가 티베트인들을 위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외치는 선인들의 발걸음에 함께 해보련다.
고난 받는 티베트의 모든 형제여, 누이들이여, 아들, 딸들이여, 어머니, 아버지들이여, 그리고 도반들이여 부디 생명을 보존하시라! 당신들의 땅에서, 당신들의 우물에서 나는 생수를 마음껏 길어 마실 수 있는 그 날까지 전체투지(全體投地)하는 당신들의 순례에 부처님의 자비와 부활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