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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種)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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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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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새로운 종(種)의 탄생'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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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2> '새로운 종(種)의 탄생'

 

‘오린지’냐, ‘어린지’냐 그도 아니면 그냥 ‘오렌지’냐로 시끄러웠던 인수위 시절이 끝나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영국이라는 영어의 본토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차라리 코미디 한 편 본 느낌이다. 전 세계의 표준 영어라고 자부했던 BBC 방송에서조차 전 세계적으로 각자 자기식대로 표현하는 영어(인도, 싱가폴, 아프리카 사람들의 영어를 들어보라!)를 두고 이제 더 이상 ‘표준영어는 없다!’고 선언하는 판에 멀고 먼 ‘극동의 조그만 나라’에서 갑자기 미국식의 혀 꼬부라진 영어 발음을 들고 나와 전 국민을 ‘몰입’시키겠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문제는 발음이 아니라 ’컨텐츠‘다! 

 

영국에 살면서 칼리지에서 강의도해보고 세미나도 하고 교회에서 설교도 하면서 도대체 교정되지 않는 발음 때문에 어려운 일도 당해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나 스스로 위축 된 적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말은 의사소통의 일부분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Contents)'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방은 귀를 종긋 세우기도하고 형식적으로 흘려듣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발음이 좋고 청산유수처럼 번드르르 한다 할지라도 취할만한 가치가 없으면 모두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우리말로 할 때도 마찬가지이리라. 반기문 총장이나 수많은 국제기구 수장들의 발음을 들어보라. 영어권 국가로 일찍 유학 가서 발음이 ’끝내준다‘는 아이들이 배꼽잡고 웃을 지경이지만 누가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가. 문제는 발음이 아니라 ’컨텐츠‘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전 국민들을 골병들게 하는 영어 때문에, 아니 영어로 대표되는 과도한 경쟁교육 때문에 머나먼 외국에서 부모와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무엇이 희망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가난한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유학생들을 현지에서 살면서 만날 때마다 참으로 복잡한 생각이 든다. 어느 사회집단이나 마찬가지이만 무엇보다 왜 왔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자기 확신’이 분명한 친구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서글픈 일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자립하기위해 하루 서너 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지만 한국에 있는 부모들이 보내주는 돈이 풍족해서인지 공부보다는 파티, 여행, 취미생활에, 일부는 하지 말아야할 ‘못된 짓’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아직은 젊고 부모가 보내주는 ‘값없는 돈’이 있어 그렇게 산다는 데야 무어라 말 할 수 없지만 아쉬운 것은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제대로 된 ‘컨텐츠’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무슨 공부를 하는지 왜 하는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체성의 문제

 

공부는 그렇다 치고 더 심각하고 큰 문제는 바로 ‘정체성의 문제’이다. 한국 사람도 아닌 것이 외국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진한 부모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세계시민’도 아니다.

언어와 문화적인 요인 그로인한 외로움 탓도 크겠지만 한국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고 의식 수준도 한국에서 ‘보내어 졌을 때’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국에 대한 역사의식이나 책임감,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의식 같은 것들도 현저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유학하는 나라의 사회와 좀처럼 사귀지를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 본토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어야하는지 어떻게 그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의 온갖 현안이 논의되고 일어나는 세계사의 중심 도시에 살면서도 세계현안에 대한 이해나 교양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은 나 혼자의 의견이나 느낌이 아니다. 대학에서 본토출신 교수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이 내게 해준 한국 학생들에 대한 평가의 일부이다. 참 서글픈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아이들을 외국에 보냈거나 보내려하는 분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런 현상을 ‘역사와 의식의 병목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정보와 기술, 다른 문화와 역사를 판단하고 다루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친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들어 서로 오도 가도 못하는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 병목 지점은 영어와 유학이라는 지점이다.   

우리 자신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그것을 부추기는 입시제도와 사회현상에 떠밀려 억지로 길을 나섰으니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는 방법도, 당당함도 있을 리 만무하다. 오늘도 그 병목 지점에 무작정 몰려들고 몰려들면 몰려들수록 엉키기만 하는 속 타는 부모들도, 길 잃은 아이들도 모두 가슴이 아프고 딱한 현실이다. 

 

영국에서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조금은 흥미롭고 그러나 조금은 서글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대차이 에서 오는 단순한 의식의 괴리에서 오는 서글픔이나 통증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라고 성장한 아이들과 문화도 의식도 다르고 그렇다고 영국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세계시민이 될만한 교양을 갖춘 것도 아닌 이 아이들이 돌아가서 만들어 낼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이전의 우리 세대가 예측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대가, 아주 새로운 유형의, 수십만의 한국인 인간 집단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고소영’, ‘강부자’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이미 그 새로운 유형의 인간, 새로운 종의 탄생 기원과 현실과 미래를 일부나마 확인 할 수 있었다.

 

희망의 길 ‘도전과 나눔’ 

 

그러나 기회는 위기 안에 있고 방법은 문제 안에 이미 드러나 있는 것처럼 희망은 그 문제 안에서 찾아지고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그 희망의 길을 ‘도전과 나눔’이라고 확신한다.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면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런던에서 작은 도전을 시작했다. 희망을 찾아 나서는 작은 한 걸음을 젊은 친구들과 함께 찾아 나섰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매주 한차례씩 젊은 대학생들과 밥을 나누는 밥상 공동체를, 그리고 런던의 어려운 이웃들과 노숙자들을 보살피는 봉사단을, 교양을 쌓아 나가는 교양도서 100권 읽기 모임을, 명사를 초대해서 그 분들의 인생과 경륜을 배우는 강연회를 시작했고 시작하려한다. 이런 모임을 통해 영국 사회에 참여해서 네트워크를 넓혀나가고 지식인으로서 교양을 쌓아 나가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나가 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유학생들이 아주 정열적으로 참여해주었고 점차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고무할 만한 일은 노숙자들에 대한 봉사활동이 아주 좋은 평판을 얻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작한지 두어 달 만에 런던의 여러 전문 기관과 교회에서 한국인 유학생 봉사단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 한 교회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노숙자 보호 프로그램 전체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새로운 종의 탄생! 

걱정과 서글픔으로 비추어졌던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사람들로 변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있을까? 

문제는 영어도 아니고 더군다나 발음은 더욱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해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어야하고 넓게 멀리, 깊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한다. 기능이 아니라 교양을,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젊은 세대는 스스로 그 답답한 병목을 뚫고 나와 더욱 넓은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린지냐, 오렌지냐가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담아 낼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도록 컨텐츠에, 근본적인 문제에 보다 깊게 천착하는 새 시대가 되기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고민하기보다 무엇이 하느님의 의인가를 먼저 생각하면 다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씀에 확신을 갖는 부모님들이, 정치인들이 많아지기를 새 시대가 시작되는 시절에 간절히 소망해본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