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겨울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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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6:23본문
2008.11.19
'누구에게나 겨울은 춥다'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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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01> '누구에게나 겨울은 춥다'
편집자註] 2월부터 성공회에서 시무하고 계시는 송경용 신부님께서 향기칼럼 필진으로 합류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재학 중에 야학활동에 투신했으며, 이를 계기로 나눔과 섬김의 메세지를 전파하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현재 신부님께서는 교단측의 배려로 런던에 위치한 한인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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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서울에서 오신 지인이 '이곳에서도 늘 따라다니는 모양이네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하셔서 '팔자인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지난 1월 1일부터 런던에 있는 교회에서 일곱 개의 영국교회와 시행중인 노숙인들을 위한 겨울나기 쉼터 프로젝트를 두고 나눈 이야기이다.
혹한기라고 할 수 있는 1월1일부터 3월 말까지 어느 정도 자활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에게 교회공간에 숙소를 만들어주고 음식과 옷가지를 제공해주는 사업이다. 상담을 통해 적절한 직업을 찾게 해주거나 정부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전문기관에 연결해주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작년에는 이 사업을 통해 80여 명의 참여자 중에 30여 명이 직업을 구했고 그중의 대다수가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런던에도 수천 명의 노숙인들이 있다. 어느 길목에서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덩치 큰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노숙인들이 개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곁에 있으면 따뜻하고 둘째는 덜 외롭고 세 번째는 동물보호단체에서 각종 '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빅 이슈(Big Issue)'라는 잡지를 -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만든 잡지로 자활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노숙인들이 길거리에서 직접 판매하며 내용은 일반 시사 잡지와 다름없다 - 파는 사람들도 있고 작은 바구니나 모자를 앞에 두고 동전을 구걸하며 앉아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물론 약물과 술에 취해있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뉴욕에도, 파리에도, 일본과 인도의 여러 도시에서도 노숙인들의 모습은 우리가 서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다. 그들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도시의 모양과 배경만 다를 뿐이다.
각 나라의 정치, 경제적 상황, 개인적인 배경도 차이가 있을 것이고 정부나 민간 자선단체의 복지수준, 관심과 지원도 큰 차이를 보여주지만 길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곳에나 있으니 춥고 배고프고 외롭기 마련이다. 인도나 아프리카 어느 도시의 노숙자나 부자도시인 서울, 런던, 뉴욕, 파리의 노숙자나 직업과 집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런던은 전 세계의 언어가 사용되는 세계 최대의 다국적, 다문화(Multi National, Multi Cultural) 도시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외국인으로서 런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관광객이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라치면 십중팔구 '나도 관광객이오!'라는 대답을 듣게 되는 곳이다. 따라서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공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영어를 못한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고-서로 못하니까-피부색이나 외모로 차별받는 일도 드문 곳이다.
전 세계의 음식, 미술, 음악, 방송, 신문, 종교가 다 있는 곳이라 약간의 경제적 여유와 시간 여유만 있다면 얼마든지 전 세계의 문화를 즐길 수 있고 다종다양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다이내믹한 도시이다. 언어와 문화가 확연히 구별되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생활모습, 영국 토종인들과 이민자들이 엮어내는 도시의 표면적인 모습에서도 세계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세계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교회에 오는 노숙자 중에도 영국인은 물론이고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케러비안 출신들이 골고루 섞여있다.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에 따라 노숙자도 세계화 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노숙인이 된 과정은 서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나 큰 차이는 없어보였다. 다만 영국인들 중에는 기성질서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질서가 만들어내는 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자발적으로 길거리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약간 높다는 것, 이민자들 중에는 불법 체류자 신분 때문에 노숙이 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같은 이유와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노동, 그리고 노숙의 세계화
첫째는 불우한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미혼모의 자식이었거나 극빈가정, 성장과정에서 입은 폭력과 어두운 기억들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이혼하고 가정이 깨지면서 외톨이가 되고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직업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방황하면서 가정도 관계도, 건강도 의지도 다 상실해버린 경우이다.
문화적인 요인 때문에 노숙인이 된 사람들은 노숙생활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당당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불법 체류자 또는 이민자라는 신분상의 문제 때문에 노숙인이 된 사람들은-거의 모두 흑인이다-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건강문제도 심각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늘 불안해하고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해보이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는 편이다. 세상이 으레 그런 것이거니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보니 열여섯, 일곱이나 스물 안쪽인 엄마는 자신에게 우유병을 물려놓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늘 어질러져 있던 방에는 모르는 남자가 들락거리고 조금 자라서 밖에 나가보니 담벼락에는 낙서투성이이고 골목마다 깨진 유리병이 널려있었다. 어른들은 늘 술에 취해있거나 싸우고 있었고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은 온갖 욕지거리를 하면서 공중전화부스를 깨부수면서 거칠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와 다른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아예 처음부터 박탈당한 셈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무관심과 무시를 당하면서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거칠고 험한 삶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본인의 잘못이건 주변인들과 부모의 잘못이건 살다가 어려운 경우를 당해 노숙인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 깊숙한 곳에 '분노와 원망'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주변 환경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빠졌던 사람들은 자신을 이런 처지로 만든 사람들과 자신을 돌보아주지 않은 이 사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더욱 깊게 마련이다. 또한 사람들을 잘 믿으려하지 않고 또 다시 실패하거나 배신당하고 버려지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큰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들의 대부분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일어나고 싶은 의지와 능력 또한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 우리 곁에 있는 이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무엇이 필요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렵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왜 거리에서 살아가는 지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가졌던 오해와 편견도 있을 것이다. 게으른 사람들, 그래서 도와주어야 아무 소용없는 사람들이라는.......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 왜 거기에 그러고 있는지를 알아야한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위해 애를 쓰듯이 노력해야한다. 한 포기 풀과 한 송이 꽃과 들판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도 시를 짓고 그 시를 통해 우주와 생명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 정글과 같은 무한경쟁 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정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참으로 냉정했고 무관심했다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원봉사라고 대답하는 거의 모든 자원봉사 희망자들의 '나보다 못한'이라는 말과 생각의 배경에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근대적 인권개념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라면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피조물일 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적 고백을 통해서라도 똑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 '나와 너'의 관계를 되돌아보아야한다.
그리고 나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거리에 있는 존재가 나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표상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부서지고 뒤틀려진 나와 너의 관계를 회복하는 '거룩한 나눔'일 뿐만 아니라 돈과 명예와 욕심이라는 길에 너무나 멀리 나가 있어 사랑하는 방법도 사랑 받을 방법도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주고 참된 인간의 길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생명의 거울'이라는 것을.
세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분노와 원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자활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주어야한다. 정부가 다 할 수도 없고 우리 개인이 다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시작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도 많고 바람도 많아 유난히 추운 런던의 겨울을 바쁘고 훈훈하게 보낼 수 있는 이유는 일주일에 하루씩 교대로 교회 건물 한 편에 매트리스를 깔아주고 깨끗하게 준비해 온 입던 옷가지들과 따뜻한 밥을 나누어주는 일곱 교회와 시간과 사랑을 나누어주는 따뜻한 사람들 덕분이다. 그리고 만날 때 마다 게으른 삶을 반성하게하고 물질과 명예에 목말라하는 내 자신을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노숙인 친구들, 선생님들' 덕분이다.
서울이나, 뉴욕이나, 캘커타나, 런던이나 겨울은 춥다. 특별히 사랑을 찾지 못해 외롭고 목말라하는 사람들, 신기루 같은 부질없는 욕망에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느 곳에 있어도 추울 것이다. 수만리 떨어진 런던에서 보잘것없는 한 이방인에게 내려주신 특별한 이 은총의 시간을 이 겨울 추위에 떠는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나누고 싶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