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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종교인의 역할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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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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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6

종교, 종교인의 역할에 대한 단상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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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15> 종교, 종교인의 역할에 대한 단상

 

 

 

 

-서울에서 이런 광고를 본다면?-

 

종교, 종교인의 역할에 대한 단상.jpg 

 

 

영국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 교수가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고 쓰인 광고를 달고 다니는 버스에 서있다.

 

그가 부회장으로 있는 ‘영국 인본주의자 협회’에서 3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금(이 중 리차드 도킨스가 1100만원 기부)한 돈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중인 이 광고로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종교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교황청에서는 “무익하고 무의미”한 켐페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영국의 종교인들은 대부분 “또 그 얘기?”라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신에 대해 이야기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식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중동 지역의 빈 라덴 같은 이슬람 세력이나 미국의 부시로 대표되는 기독교/유대 근본주의자들과 그들의 정치적 이념과 그룹을 의미하는 네오콘은 똑 같은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나 서구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이 이들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서구에서의 이런 종류의 무신론적인 켐페인은 사실 역사가 깊다. 영국에서는 철학자로 유명한 버트란드 러셀, 독설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 같은 사람들이 무신론자였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을 확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최근에는 이 광고를 주도하고 있으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자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강연자이며 영향력 있는 학자인 리차드 도킨스, 가디언이라는 신문의 논설위원이자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로 선정되었으며 아놀드 토인비의 손녀인 폴리 토인비가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평가받고 있다.

    

“종교, 신은 인간의식의 투사”일뿐이라고 했던 포이에르 바하나 “마약”이라고까지 주장했던 엥겔스와 맑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니이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종교는 역사의 한 복판에서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런 종류의 논쟁이 신기할 것도 없지만 - 마치 상업광고처럼 버스에 붙인 아이디어는 신선했지만 - 리차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지난 시절 대부분의 무신론자들과는 달리 종교인들과 직접 부딪히면서 ’반 종교, 무신론‘의 확산을 저술, 캠페인,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이들의 이론적 주장은 여기에서 다룰 주제는 아니라고 보여 진다. 다만 이들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이들의 주장이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그 이유 중의 하나인 종교, 종교인들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려 한다.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존재이유는 ‘사랑’이며 ‘자비’이다. 다양한 형태의 기도와 예배, 자기수련, 공동체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산해 나가는 것이 모든 종교가 갖는 기본적 원리이며 공통의 모습이다. 같은 형식과 내용,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도문과 예배가 수 천 년을 전해내려 오면서도 시대와 세대가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며 늘 새로울 수 있는 것이 종교가 갖는 가장 큰 신비이다. 

모든 종교는 또한 믿는 사람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만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형식은 다를지라도 세상을 향해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려는 것은 자신의 믿음과 종교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종교간 갈등이 생겨나고 믿음이 다른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분쟁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세속 권력과의 타협, 지배와 굴종을 향한 전쟁이 반복된다. 심지어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 내부에서조차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이 멈추질 않는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랑과 평화, 관용과 용서, 해탈과 구원, 모든 생명이 한울님이라는 가르침, 모든 종교인들의 신앙과 얼마나 배치되는 일들인가? 

주로 ‘과학과 종교’라는 이론적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리차드 도킨스 같은 사람의 주장은 티나 비티(Tina Beattie)라는 여성 신학자가 주장하는바 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인 측면을 간과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Gender문제, 즉 남성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과학적 이론에 기반 해 있으며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 여성들의 생명에 대한 체험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에,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종교에 더욱 더 열성적인가를 설명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지만-물론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인식에도 많은 논쟁거리가 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최근의 ‘종교, 종교인의 역할’만을 놓고 본다면 ‘종교가 만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반박할 수만도 없다는 생각이다. 

 

모든 종교, 종교인들의 기능과 역할은 각 종교가 표방하는 언어와 방식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소금과 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이웃, 세상이 슬픔과 불의에 절망하거나 썩지 않도록 소금이 되는 것, 우리 인생이, 우리 공동체가 그리고 이 세상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밝혀주고 안내해주는 빛, 그것이리라.

그런데 슬프게도 종교, 종교인이 갈등과 분쟁, 전쟁의 원인과 도구가 되어 가고 있다. 빈곤과 착취, 불평등과 억압이라는 불의를 정당화해주고 감추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대변해주기 보다는 힘 있는 사람들의 혀끝을 달콤하게 적셔주는 꿀들이 되어가고 있다. 종교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상식 이하의 발언들도 종교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나 버스 광고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종교는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면서도 세금감면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땀 흘리지 않고도 존경 받으며, 누구로부터도 공격당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이성적 설득과 관용이 없는 교리로 어린이들을 세뇌할 권리 등에서 당연한 것처럼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말처럼 이미 그렇게 특권층이 되었거나 되어가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종교는 가짜이고 신은 없으니 지옥이니 심판이니 하는 것에 두려워 말고 마음껏 인생을 즐겨라!’라는 캠페인은 비단 서구에서만 일어나거나 일어날 문제가 아닐 것이다. 조만간 서울 한 복판에 저런 광고가 돌아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유럽과는 달리 서울에서는 당장 소송이 일어나고 뜯어내려는 사람들로 인해 난리가 날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자신을 너무 폄하하는 것인가?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저런 광고를 보면서 ‘못된 녀석들!’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심한 자괴감이 먼저 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도킨스 교수의 사진을 보면서 그와 함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폴리 토인비, 약자들을 위한 공공정책을 주창하고 그를 위해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활동하는 그녀가 떠올라서이기도 하다. 폴리 토인비는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 재원 이었지만 대학을 중퇴하고 공장에 들어가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으며 일생을 사회적 약자들,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지극히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는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21세기 최첨단 시기에, 자유와. 인권, 복지를 자랑하는 민주주의 나라 수도 한 복판에서 경찰과 가난한 국민들이 불에 타서 죽은 사건이 떠올라서이다. 그 죽음에 대해 애도하고 참회하면서 죽음의 근본적 원인인 ‘뉴타운과 개발’이라는 물신주의를 반성하며 대안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죽음을 죽은 자들의 이기주의와 그 주변 사람들의 탓으로 돌릴까 골몰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참으로 삭막하고 비정한 사회이다.

 

이렇듯 우리 자신들과 이웃들과 나라가, 세상이 물신(物神)주의로 팽배하고 물신과 전쟁의 광풍에 사람들의 삶과 영혼이 망가져가는 데에도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가장 거대한 조직이라는 종교가 그 광풍과 한 모습으로 보여 질 때가 더 많으니 ‘만 악의 근원’이라는 비판을 어찌 피해 갈 수 있겠는가. 

물신과 전쟁의 나팔수가 되어주는 종교는 종교도 아니다. 니이체의 말대로 ‘죽은 신’을 섬기는 광신자들이며 맑스의 말대로 ‘마약’에 취한 자들이고 도킨스의 말대로 ‘악의 근원’일뿐이다. 그들 스스로 절대다수의 종교, 종교인이라고 자처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근원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고 뿌리가 뽑혀져 있다.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사랑과 자비와 공생과 평화를 바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주는 종교, 종교인들은 불행하게도 절대 소수이다. 그들 역시 단단한 물신의 사슬의 지배에 묶여있는 ‘종교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때로는 삭풍이 몰아치는 광야로 쫓겨나야 하는 종교계의 약자들이다.  

 

여기에 Tina Beattie라는 여성 기독교 신학자가 주장한 21세기에 필요한 종교의 역할을 소개하고 싶다. 그녀는 우리 시대 종교의 첫 번째 역할은 1948년에 제정된 UN 인권 선언대로 인종, 종교, 성별, 민족에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인권’에 대한 절대 존중과 옹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인류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어떤 종류의 차별과 억압, 독재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데 종교, 종교인이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물신주의가 횡행하는 ‘세속주의’, 방종에 가까운 개인적 자유주의, 전쟁과 분열, 환경파괴, 이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 신(神)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New-Age풍의 각종 명상, 수련, 치료 법 등이  만연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종교, 신앙의 전통적인 영성과 가르침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창조자이며 운행자인 신에 대한 경외심, 엄격한 영적 수련, 조건 없는 이웃 사랑, 형제, 자매애, 책임적인 공동체 주의, 관용과 용서와 화해 등 전통적인 가르침과 가치를 확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근본, 기본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과학의 숭배자들인 도킨스나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의 주장하는 대로 과학을 믿는다면, 그리고 신은 없으니 인생을 즐기자며 맘껏 즐겨보면 우리들 인생이 정말로 행복해지며 세상은 평화가 올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이론이 아니라 상황이 이미 증명하고 있으니 논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내용은 지극히 맘에 들지 않고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광고를 붙이고 다니는 유럽의 여러 도시와 런던의 버스는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운행 중’이다.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공격에도 맞대응하지 않고 성찰하고 논쟁하며 지혜를 모아가는 이들의 관용(Tolerance)과 포용(Comprehensiveness)이, ‘정상 운행’이 부럽다.

  

서울 시내버스에 이런 광고가 붙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애통하고 비통한 용산 참사 현장이 용서와 화해,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되기를, 참된 종교의 못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