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희망 찾아 나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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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07본문
2009.1.10
평화, 희망 찾아 나서기
송경용
이 글은 사색의향기(http://www.culppy.org) 홈페이지에 나눔과미래 이사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쓰신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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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칼럼 <14> 평화, 희망 찾아 나서기
이른 새벽 꽁꽁 얼어붙은 잔디를 밟고 나서니 찬바람이 하나 가득 폐부를 찌르고 들어온다. 밤 새 뒤척이느라 아득했던 정신이 일순 번뜩 제 자리로 돌아오는 듯하다. 추운 겨울이다. 하루하루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와 지인들의 안부, 이웃들의 생기 없는 얼굴, 부모님 사업과 등록금 걱정에 다음 학기를 걱정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들판에 하얗게 깔려있는 서리처럼 마음이 얼어온다. 다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밥 냄새,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아직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뉴스를 켜본다.
지구촌 곳곳에서 심한 몸살을 앓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작년에 시작된 경제난과 전쟁, 국가 간의 충돌이 그치지 않고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날씨마저 추워지는데 사람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머물고 있는 영국에서도 지난 일 주일 사이에 수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즉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직업을 잃은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또는 백 년이 넘게 유명세를 이어오던 기업들도 문을 닫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마치 유리그릇을 포개들고 돌밭을 뛰어가는 사람들처럼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서울에서는 ‘뉴 타운’이니 ‘재개발’ 이니 하는 사업으로 인해 집이 없어 서러운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고 국론은 분열 될 대로 분열되어 나라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평화와 희망의 증좌를 찾아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희망은 아주 작은 곳에서, 평범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아니 그 희망의 싹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어왔지만 단지 우리가 지나쳐 버렸거나 찾지 않았을 뿐이다. 어려울수록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작고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다. 크고 멀고 추상적인 것에서 눈길을 돌려 작고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다시 근본을 성찰하는 일이다.
아무리 두터운 얼음장 밑에서도 물은 흐르고 꽁꽁 얼어붙어 서걱되는 잔디와 풀들도 조금만 해가 비추이면 곧바로 일어 설 것이다. 앙상한 가지만 있어 춥고 외로워 보이는 겨울나무들도 끊임없이 생명의 수액을 빨아올리고 있어 저렇게 견디고 있는 것이다. 단 한 톨의 씨앗으로도 들판을 뒤덮을 수 있고 한 개비의 성냥만으로도 대륙을 불사를 수 있다. 하나의 가느다란 실뿌리만 살아있어도 다시 큰 그늘을 드리우는 거목으로 자랄 수도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누구에게나 그 하나의 씨앗은 있게 마련이고 한 개비의 성냥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잘려나가고 뿌리가 뽑혀나가는 것 같아도 하나의 실뿌리는 살아있게 마련이다.
지난주에 한 톨의 씨앗, 하나의 실뿌리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뉴스를 통해 만났고 한 사람은 옥스퍼드 대성당에 찾아가서 만나고 왔다.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지난 주 Alzajeera 뉴스를 보다가 만난 사람이다. 현직 이스라엘 블랙호크라는 전투 비행단의 캡틴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가자지구 폭격임무를 거부하고 아랍권에서 설립한 방송에 나와 전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 중에 있는 이스라엘 전투 비행단의 책임 장교가 방송에 나와, 그것도 아랍권에서 설립한 방송에 나와 양심선언을 한다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아서였다. 그는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지금 전쟁은 정말로 미친 짓이다. 나도 비행단을 이끌고 수 없이 출격을 하고 폭격을 했지만 이제는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는 이런 식의 미친 전쟁이 결코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 동료와 친구들이 이 미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 동포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전쟁은 당장 멈추어져야 한다. 전 세계 시민들은 각자의 정부에 압력을 넣어 전 세계의 모든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해줄 것을 호소한다. 나는 미국도, 오바마도 믿지 않는다. 전 세계 시민들이 이 미친 전쟁을 빨리 끝내도록 지금, 당장 행동해줄 것을 호소한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여기에 다 옮길 수가 없다. 처음에는 혹시나 납치되어서 반 자의적으로 하는 말이 아닐까 의심도 하고 저러다 군사재판에 회부되어서 죽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인터뷰 내내 그가 피력하는 평화에 대한 단호한 소신과 한 인간으로서의 처절한 고뇌, 인류의 양심에 대한 절절한 호소에 감동되고 말았다.
또 한 사람은 George Bell이라는 분이다.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쓰인 곳이고 무대가 되었던 옥스퍼드 대학의 하나인 Christ Church College 구내에 있는 옥스퍼드 교구 대성당에 가면 그 분을 기리는 작은 기도소가 있다. 2차 대전 기간에 독일을 보복 폭격하려는 영국 정부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일생을 전 세계 평화운동에 헌신한 영국 성공회의 주교님이셨던 분이다.
또한 히틀러 암살 계획으로 감옥에 갇혀있던 20세기 대표적 양심이자 신학자였고 목자였던 독일의 본회퍼라는 분을 지지, 지원했던 분이기도 하다. 그 분이 하신 말씀이 그 기도소 앞에 새겨져 있다.
“어느 개인도, 교회도 나라도, 민족도 죄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서로에 대한 용서함 없이는 그 어느 개인도, 교회도, 나라도, 민족도 참 된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다시 융성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전쟁 중에 자신들의 나라와 동료들, 국민들에게 ‘반역자’라는 낙인과 그에 따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평화’를 외친 분들이다. 이기적 민족주의, 보복적 전쟁에 반기를 든 이스라엘의 그 공군 장교도 시간이 지나면 George Bell 주교님처럼 인류의 양심을 대변한 사람으로 기려지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지금은 하나의 실뿌리처럼 연약한 목소리인지라 잘 들려지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인류의 가슴과 양심 속에 울려나는 ‘위대한 소리’가 될 것이리라.
또 하나의 사람은 28년 만에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로 있는 친구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전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바로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시간의 벽도, 마음의 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20대, 그 친구가 10대였을 때 만나서 청춘지절의 몇 년 동안을 함께 공부하고 노동하며 지냈던 친구이자 제자이다. 그 친구의 형 역시 그 시절을 함께 했었지만 뜻을 다 펴지 못하고 20대 중반에 일찍 죽었고, 부모님 역시 찢어지게 가난했던 환경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일생을 사셨던 분들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이 친구는 살아 남았고 열심히 삶을 개척해왔다. 야학에서 2년 동안 공부한 것 빼고는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던 탓에, 그리고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해 해야 했던 상황을 견디고 버텨오느라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딱지를 떼지 못했지만 그는 30년 전, 청춘지절에 했던 우리들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며 살아오고 있었다. 해 마다 최소한 한 명의 어린 아이를 도와주자던 약속, 살다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 일에 힘쓸 것과 그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를 돕자던 약속, 그리고 죽을 정도로 어려워져도 최소한 남에게 사기는 치지 말자던 약속을 그는 충실히 지키며 살아오고 있었다. 술 한 잔 걸친 목소리로 ‘선생님!’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마구 솟구쳐 올라왔다.
‘선생님, 저는 그래도 그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제가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참 힘드네요, 빨리 오셔서 다시 같이 어울려 살 거죠?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아직도 셋방살이, 번듯한 직장도 못 가진 친구.......
이 위대한 사람들과 벗들을 생각하며 새해의 소망으로 ‘평화와 희망의 길 찾기’로 정해보았다. 전쟁의 종식뿐만 아니라 약육강식의 경쟁체제를 강요하는 온갖 제도로부터 비롯되는 분열과 갈등, 무관심과 좌절과 냉소, 내 안에 깃든 이기적이며 불안하고 부정적인 마음들이 치유되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나누고 찾아 나서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平和’의 ‘和’에 깃든 의미를 성찰해본다. ‘和’란 쌀과 입이 어울려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쌀을 나누는 것, 먹을거리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 내가 가진 기득권을 먼저 내어 놓는 것, 그것이 평화를 이루는 기본이다.
새 해에는 내가 먼저 그렇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평화와 희망을 키워내는 작은 씨앗, 하나의 실뿌리들로 가득차기를 소망해본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