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의 1년 동안의 경험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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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21본문
사회복지 현장에서 10여년간 천착하여 활동하던 중에 ‘지역사회’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어 뛰어들었고,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무작정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마련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2012년 4월 27일 상법상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설립과정 역시 경험을 쌓기 위해 법무사 등에 대행하지 않고 직접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그 경험이 회사라는 구조를 이해하고 의사결정 단위와 임원의 책임 범위 등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은 마음만 가지고 겁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이미 지역사회 안에서 무르익고 있었던 사회적 경제 영역의 놀랄만한 주민 관심도와 성북구청 차원의 중간지원조직들의 도움을 받아서 숨가쁘기는 했지만 아무런 노하우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안정화 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 ㈜살기좋은마을은 주아이템인 택배사업을 모태로 CJ대한통운과 함께 파트너쉽을 형성하며 사업초기인2012년 6월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사업을 함께 해오고 있으며, 그 사이에 서울시 혁신형사회적기업과 서울시예비사회적기업의 지정(2012.10.30.)을 받으며 어려운 고비를 넘겨 온 것도 사실이었다.
1년이 되는 현재 회사의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영업 첫 달의 매출에 비해 약 800% 성장한 1,200만원 수준의 매출을 달성하는 회사가 되었다. 일반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인건비 2인의 규모 밖에 안되는 회사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수준처럼 보여도 이곳에서 어르신 20명 직원 5명이 근무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되었다.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회사지만 지난 1년간 걸어 왔던 시간을 회상하며 활동가의 수기를 남기고자 한다. 필자에게 지난 1년 동안의 경험은 비용으로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배워 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적도 없었던 비영리활동가요, 사회복지사요, 감리교회 목사인 사람이 회사를 경영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고 배우고 실패했던 시간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체득한 것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회사의 경영에 필요한 것은 경영자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라는 것과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회사의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인 디테일이 포함된 기획력과 가장 중요한 자금동원 능력이 있으며 회사의 주요매출원에 대한 시장 개척,즉 영업과 회사의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치열하게 도약해야 하는 생산성 관리, 그리고 노무・인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필요성, 조직을 소통 시키는 능력과 직원의 능력에 맞는 역할 부여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 홍보와 마케팅은 구청의 중간지원조직들이 수행해 주셨기 때문에 그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런 기업 생존의 과정을 겪으면서 개인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과 직원들이 회사와 뜻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관계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과정이 제일로 필요하고 지금도 그 지난한 과정에 놓여 있는 과제가 있다. 아무튼 사회적기업은 일반기업과 달리 어떻게 회사 설립 취지에 맞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까”하는 점에 기본적인 가치를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대목이다. “사회적기업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하는 것을 끊임없이 고뇌해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을 해야 하는 과정도 지난 1년간 겪었던 시련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서 필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으로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며 이런 질문 속에서 나 스스로에게 답을 얻을 수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긴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종교인으로써 목사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 참여에 대해 나만의 신앙적 가치관과 신앙관이 있어야만 했다. 과정철학의 주창자인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는 신앙은 ‘수행’이라고 일찍이 말한바 있다. 수행을 불교에서의 동안거,하안거처럼 정신적 참선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기독교의 수도원적 영성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시시대와는 달리 연역적 수사법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에게는 수행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요구되는 기독교적 수행은 세상속에서의 행위와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는 프락시스(Praxis)영성, 곧 실천적 수행이 아닌가 싶다. 철학의 사전적 의미로의 프락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프락시스를 폴리스에서 필요한 윤리적 실천으로 제한했었다. 하지만 19세기 정치사회학자였던 막스베버(Max Weber)는 프락시스를 의지적 행위의 지표로 간주하여 ‘사회행위론’으로까지 확대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수행은 실천을 통해 사회적 혁신을 이끌어내는 행위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수행의 입장이 되었다.
두 번째, 위 질문에 대해서 나는 시장자본주의 우상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리주의와 시장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명제 하에 지난 200년간 시장자본주의를 주류경제학의 시스템으로 고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시장자본주의에서 말하는 패배자들)의 삶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며, 이런 사회적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데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모든 재화는 구매자의 능력과 삶의 수준에 맞춰져 있고, 금융의 순환구조는 경제적 구매력이 있는 계층으로만 재편되어졌으며 돈이 돈을 버는 구조, 즉 통화승수의 이치를 아는 금융가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구매력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었고, 시장에서의 퇴출은 인간으로서의 초소한의 권리에서도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 대표적인 배제가 인간의 사회권을 인정하지 않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동안 진보주의 영역에서는 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오고가면서 현재의 시장과 자본에 의해 독과점 되는 경제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으나 그 대안이 마련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오만한 회의주의이다.
오히려 대안을 찾는 시간에 인간의 공동체성에 기반으로 삶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필자를 사회적기업가로 뛰어 들게 한 동기였다. 우리 세대부터라도 마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의 삶의 길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지식인들이 만들어 내는 논의의 허구성을 바라만 볼 수 있는 시간이 최소한 나에게는 없었다.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조금만 과장해서 말하면, 종말론적인 세계관이라고 한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필자가 사회적기업으로 뛰어들게 된 배경과 동기였다는 것을 다시 되시기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고생이 최소한 개인적으로는 내 가족과 자녀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포괄적 대상과 특수한 계층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가 처해 있는 위기라는 생각이 지금의 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위 질문에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 내가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후대의 자식 세대들에게 보여 줄 것이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매우 조심스럽기만 하다. 왜냐하면, 민주화운동 세대인 386 세대와 재야 운동권에서 소위 말하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스타의식이 녹아 있는 생각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신다. 정치공학적으로, 또는 국가를 위해 공개적인 능력을 보여 주셔야 할 분들이 우리 사회에는 필요하다. 그러나 최소한 나에게는 포함되지 않는 기준들이라고 본다. 필자는 인텔리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전문직업인은 더더욱 아니며 아주 작은 단체의 비영리활동가이고 가난한 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그런 거창한 수식어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그래서 더 자신 있게 도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해도 기업의 도산은 개인의 파멸로 연결되기도 하기에 신중하게 가야 할 책임을 느낀다.
사회적기업은 이제 사회적경제의 과도기적인 정부정책과 궤를 같이 하도록 설계되었다. 아무리 초기 단계라고 해도 처음부터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태생의 한계가 있다. 시장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장주의의 대안을 마련하는 구조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지금의 사회적기업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사회적기업이라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중년의 비영리활동가와 사회선교를 지향하는 성직자들의 현실이다. 이 현실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를 구현해 내지 못하면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는데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사회, 경제시스템이 주어진다고 해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동체 의식의 훈련이 없이는 우리는 그 제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회적기업의 가능성을 일찍 포기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사회적기업이 객관적으로 기업 평가를 통해 옥석을 가리는 필터링과정도 우리 사회에서는 최소한 필요한 과정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이제 시작단계임을 모두가 공감했으면 한다. 또한 사회적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가치관과 근로의 태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역량의 자기 평가와 업무만족도를 상승 시킬 수 있는 근로자 복리후생 등 수많은 과제들도 결국에 기업의 구조에서는 매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이 과제를 극복해야만 한다고 본다. 사회적기업도 기업이기 때문에 생존이 먼저이다. 다른 모든 포장은 그 다음에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생존에 필요한 기술은 회사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경쟁력 재고는 업종별로 다르겠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숙련도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무의 건전성,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매력적인 소스, 경영자의 사회적기업가 정신, 상품의 서비스 질,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세밀한 관리적 틀과 생산관리기법 등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처음부터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능력 있는 직원 또한 부족하고 경영자 및 관리자의 능력도 매우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회사들이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 기업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기업을 시작한 이상 이와 같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변명할 수 없는 과제가 놓여 있음을 상기한다. 노력을 했지만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많은 이유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문을 닫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우리 회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물론 경영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며 직원들과 함께 해야 하겠지만, 그 동기를 만들고 회사를 일구는 것이 경영자의 몫이기 때문에 잠이 안온다.이것이 현재 사회적기업가로 자청해서 입문한 1년차 초년생의 회고기록이다. 나눔과미래에게 감사하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사랑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 필자의 좌우명이 하나 더 생겼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뿐"
사진은 광고 : 길음뉴타운 분수광장에서 '힐링장터'를 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오범석
기독교대한감리회 평지교회 목사
노숙인자활쉼터 ‘아침을여는집’ 소장
㈜살기좋은마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