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그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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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15본문
2011.8.23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그 허와 실
오범석
2006년을 기점으로 서울에 분포된 쪽방 밀집지역들이 도시환경미화사업 또는 도시녹지화사업으로 재개발되면서 영등포 일대의 쪽방과 서울역 건너편 양동 일대 쪽방이 절반가까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시에서는 도시재정비 차원에서 쪽방을 없애면 지긋지긋한 도시빈민계층이 감소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쪽방멸실 계획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그 결과 지금 영등포역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하는 거리노숙인이 발생하였고, 쪽방이 사라진 후 쪽방주민과 일부노숙인의 임시주거의 수요욕구를 흡수해 준 것은 다름아닌 우우죽순처럼 생겨난 고시원들이었다. 그 이후 한차례 영등포역사에서 철도공안의 폭행으로 사망한 노숙인의 인권문제를 제기 하기 위해 영등포 경찰서를 찾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때 사라진 쪽방들의 공백을 사람들이 메워주고 있는 영등포역을 본다. 역사를 중심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쪽방주민과 노숙인은 여전히 영등포역 주변에서 더욱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전전하고 있고 쪽방에서 밀려난 사람들 중에는 일부 거리노숙으로 밀려난 사람도 있으며 이 분들을 돕기 위해 몰려든 약 40여개의 각종 민간단체들로 영등포역 주변은 북새통을 이루는 모습을 2010년까지 그 곳을 방문할때면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다.
이번 서울역에서 코레일은 거리노숙인을 강제퇴거 하겠다는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2011년 8월 1일에 노숙인 강제퇴거일에 맞춰서 서울역 광장에서 21개단체가 참여한 서울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긴급기자회견에 나눔과미래의 일원으로 3일간 천막농성에 참여했다.
노숙인생활시설 시설장이 천막농성장에서 시위를 한다는 뒷말을 없애기 위해 아예 여름휴가를 내서 지낸 3일간의 서울역 광장에서의 거리 생활은 나의 노숙인복지 종사자로서의 10년이란 세월을 반성하게 하면서도 지금까지 민간복지단체나 정부도 아주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거리노숙인의 보호체계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은 치우고 싶다고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보기 싫은 것은 치워버리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바람이라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일 것이다. 1961년 미국 뉴욕의 웨스트 빌리지 재개발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도시문제 평론가인 제인 제이콥스가 『위대한 미국도시들의 죽음과 삶』에서 이런 말을 했다. "움직이는 도시의 질서와 생명력이 거리에 사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개인들의 집단에서 비롯됐다. 도시는 도시계획위원회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삶 속에서 열심히 자기 일에 전념하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타인들의 저차원적인 행동에 의해 생겨난다. " 또 이런 말도 했다. "구도시가 자신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고 있다면 그 표면적 무질서 아래에는 거리의 안전과 도시의 자유를 지탱하는 놀라운 질서가 숨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슬럼가를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하향식(밀어 붙이기) 재정비를 하자 도시 범죄율이 30%가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농성을 위해 만든 천막의 늘어진 그 경계선을 통해 내 눈에 들어왔던 보도 위를 걷는 사람들과 보도 위에 누워 있었던 사람들의 광경이 내가 3일동안 서울역 광장에서 본 전부다. 천막 안쪽에서 바깥세상을 하루 종일 바라보면서 도심의 거리, 아니 보도와 관련된 도시계획과 재개발 속에 스며 있는 질서의 속성과 그 근원적 발생원인도 생각해 보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명의 거대한 울타리인 도시라는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도시자체가 지니는 유기체로서의 생명력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한편 약간의 움직임을 통해 활동이라는 것도 했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거리에서의 일상들이었다. 하루 세 번 이루어지는 ‘노숙인강제퇴거 철회’와 관련된 유인물을 서울역사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주요 이동 동선인 계단 앞에서 약 1시간씩 배포하는 것과 야간 11시와 새벽 2시에는 혹시 노숙인을 폭행하는 공안이 없을지 감시하는 순찰을 돌았고, 간은 시간에 서울역사 주변반경 70m를 정해서 두 개 조를 편성하여 실제 거리노숙인의 숫자를 파악하는 시간 등 하루를 나름대로 짜임새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결과 깨닫게 된 하나의 사실은 며칠째 서울역을 중심으로 거리 노숙을 하시는 분들의 숫자가 하룻밤 약270명~300명이라는 것과 서울역 광장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 싸우고 고성을 지르며 광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부류가 약 30명쯤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10%에 불과한 이분들의 문제행위는 너무나 역동적이었다. 심지어는 밤새워 술을 마신탓에 그 다음 날 낮에도 광장 여기저기에 누워 자는 광경이 연출되었고, 어떤 분은 일사병에 목숨까지도 위험한 상태가 되어 경찰에 조치로 앰블런스를 동원하여 병원으로 이송하는 사건도 있었다. 또한 밤이 되면 술판은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는데 여기 저기서 약 3차례의 싸움으로 역시 경찰이 새벽 4시에 출동하여 사태수습을 하였고, 동이 트는 시간이 되자 농성천막에서 일대 청소를 하였고 인근 노숙인 교회에서 교인들이 나와 청소를 했고, 서울역사 직원 몇 분이 마지막 청소를 하자 광장이 비로소 깨끗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술을 마시는 행위보다 그 이후의 다양한 행동들이었다. 대낮에 농성중인 천막 옆에 와서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한 무리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며 노상방뇨를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서울역을 이용하기 위해 급히 계단을 올라가려는 여성의 앞을 막으며 돈을 요구하는 분등 시민들을 당황케하거나 놀라게 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게 하는 것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시민들 중에는 이런 행위를 보면서 경악하시는 분부터 아예 일상의 삶처럼 담담히 받아들이는 분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이시는 모습도 보았다. 그렇게 아무 곳에서나 이루어지는 소변행위로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계단 여기저기서 심한 악취가 나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보도를 지나가던 젊은 여성에게 누군가 먹다 남은 소주병을 집어 던져 병이 깨지는 소리에 공포심을 갖게 하는 행위 등을 목격하면서 이번 서울역 사태의 문제점을 바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서울역 광장에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코레일이 너무도 교묘히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하시는 분들의 약 10%에 불과한 약 30~40여명의 상습주취자의 문제를 전체 노숙인의 문제로 왜곡하여 언론에 유포했다는 점에서 화가 났다. 이것은 야간 11시쯤에야 조용히 역사 주변의 어두운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주무시고 새벽 5시쯤이면 소리없이 자신의 일터나 생활터전으로 사라지는 대부분의 거리노숙인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한 채 그 분들을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어 두 번 죽이는 논리의 비약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코레일의 근거 없는 언론 플레이에 늘 그렇듯이 언론들이 널 뛰듯이 설친 것도 한 몫 했다.
그리고 거리노숙인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는 코레일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영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의 공공보도이자 공공역사 공간을 사유화된 기업인냥 영업방해 운운하며 일방적인 ‘거리노숙인 강제퇴거’라는 조치를 강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빈곤의 문제를 염두해 두지 못한 철학이 부재한 공기업의 얕은 횡포로 밖에 볼 수 없는 태도이다. 최소한 공기업이라면 사회적 대안마련과 사회적 합의점 도출이라는 매우 중요한 질서확립에 당연히 참여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방패삼아 시민의 권리와 거리노숙인의 인권을 동시에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이제라도 입장 선회를 요청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거리 노숙인도 살리고 모든 시민의 불편도 감소시키는 기준마련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서울역사를 중심으로 발생한 사태의 핵심에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거리의 상습주취자를 중심으로 이뤄어지는 행위에 있다. 그러므로 서울역과 같은 공공역사에서는 불특정다수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특정행위에 관한 규제’와 같은 공공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는 인권단체들의 눈치를 보며 특히 거리에서는 시스템적으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할 수 없다는 관료 특유의 복지부동 자세로 눈치 정책으로 일관하는 입장을 내려 놓고 적극적으로 민간단체와 협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데 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시민단체는 이번 서울역 사태와 관련해서는 거리노숙인의 인권적 기준이 마련될 수 있는 적절한 기준마련과 공공장소에서 시민을 상대로 벌어지는 무차별적 돌출행위에 대한 제어기준을 사회복지단체 및 정신보건 등의 전문가들과 합의하여 제시함으로써 정부에서도 사회복지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의 가장 좋은 해답은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담하여 실제적으로 거리노숙인이 더 이상 도시의 보도에서조차 밀려나는 사태를 저지하고 이 땅의 주거취약계층의 절대빈곤에 위치한 노숙인에게 마지막 사회적 안전망의 경계선을 지켜주는 것과 사회적으로 이 땅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서울역을 둘러 싼 각종 지원 기관들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레일은 대화의 자리에 나서고, 사회적 합의 및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이 지난 서울역 천막농성에 참여 했던 아주 보잘 것 없는 이의 활동 수기이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