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1) 매몰비용 – 공동의 책임, 공공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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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4 17:34본문
2008년 즈음엔 선거를 이용해 너도나도 지정을 요청해서, 2010년 즈음엔 폐해가 드러나며 사회갈등의 주범이 되서 이슈가 되었던 뉴타운은, 2011년 마지막 국회에서 출구전략2)이 마련되며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하지만 뉴타운 지역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갈등요소가 있지만 핵심적인 갈등 중 하나가 매몰비용이다.
매몰비용이란 사업을 중단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사업 진행을 위해 추진위나 조합이 빚을 지면서 생긴다. 토지 등 소유자로 사업의 추진위나 조합은 자본이 없기 때문에 사업 진행을 위해 통상적으로 시공사로부터 돈을 빌린다. 보통 사업이 완료되었을 때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이 대여금을 갚는데, 사업 진행이 안 되고 추진위나 조합이 해산되었을 경우에도 돈을 갚아야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것이 매몰비용이다.
문제는 해산된 추진위나 조합에선 사업 진행을 위해 이미 돈을 사용해 갚을 돈이 없다는 데서 발생한다. 더욱이 그 액수가 결코 적지 않다. 총회 한 번 하는데도 홍보OS요원을 돌리며 1억 원 이상 쓰는 경우가 허다한 뉴타운 사업의 특성상 매몰비용은 보통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른다. 지난 2012년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된 사당1구역의 경우 인가 취소 이후 시공사인 삼성물산에서 대여금에 연대보증한 조합 임원들에게 총 56억 원의 가압류를 신청했다.3)
원칙적으로 매몰비용은 빌린 돈이니 갚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돈이 사업을 위래 빌린 돈인만큼 사업을 누가 추진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채무 주체와 사용 주체를 구분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사업 주체는 주민, 정확히는 토지 등 소유자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상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시행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토지 등 소유자로 구성된 추진위나 정비사업조합4)이다.
하지만 진행과정상 사업 주체는 구청·시청·도청 등 행정청이다. 사업의 처음 시작인 구역지정 은 시장·군수·구청장의 신청을 받아 (특별시·광역시 등의)시장이나 도지사가 지정한다.(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는 시장이 직접 지정한다) 토지 등 소유자가 정비구역 지정을 제안할 수 있지만 결정은 시·도지사가 한다. 사실상 행정청이 시작하는 사업인 것이다. 더욱이 그 후 많은 인허가 과정에서 행정청은 사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본래 정비사업조합은 도시정비라는 공적인 일을 위해 행정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것으로 봐야한다. 위임자가 사업 주체에 해당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7~8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열악한 도시환경을 빠르게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개발을 추진해왔다. 도시정비사업을 민간이 시행하는 방식이 생기면서부터(1983년 합동재개발) 정부는큰돈을 들이지 않고 도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이 방식을 강하게 밀어붙여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탈법이 용인되었다. 개발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니 소유자들도 환영했다. 정부는 ‘재개발=돈’이라는 공식을 조장해 주민들로 하여금 사업을 추진하게 했다. 사업 추진의 역사적 주체이기도 한 셈이다.
토지 등 소유자와 행정청에 덧붙여 한 주체가 더 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을 뿐 뉴타운지역 주민 대대수가 생각하는 사업 주체는 시공사이다. 총 사업비가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건설 사업을 이 분야의 지식이 없는 주민들이 시행한다는 것은 사실 시작부터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주민들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을 뿐 사업에 필요한 돈이 없다. ‘갑’은 조합이고 ‘을’이 시공사지만, ‘을’이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돈을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 갑을관게는 뒤바뀐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이다. 돈을 빌린 뒤 사용해서 갚을 여력이 없어졌을 때 대부분의 조합은 시공사의 뜻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채무 주체는 조합이지만 사용 주체는 여기에 행정청과 시공사가 더 들어간다. 매몰비용을 조합에서 온전히 책임지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와 같이 도시정비사업은 토지 등 소유자, 행정청, 시공사 세 주체가 있다. 주체가 셋이기 때문에 매몰비용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당연히 공동의 책임이다. 문제는 이 책임의 경중을 수치화해 물릴 수 없다는데 있다. 수치화할 수 있다면 세 주체가 자기 책임만큼 분담해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수치화 할 수 없기 때문에 매몰비용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매몰비용의 해법으로 있는 제도는 ○추진위에 대한 매몰비용 지원 ○시공사(혹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에서 대여금을 포기할 경우 법인세 감면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조합과 더불어 전자는 행정청이 책임을 지는 방법이고 후자는 시공사가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먼저 매몰비용을 지원하려면 이 비용 사용이 타당한지 검증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건축과 회계의 전문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조합에서 완벽하게 자료를 증빙해 검증받기란 사실 어렵다. 게다가 도덕적 해이나 불법적인 일도 많다.5) 검증받을 수 없는 비용도 있는 것이다. 2012년 11월 서울시의 매몰비용 지원 조례가 통과됐지만 첫 지원은 2014년 5월이 돼서야 이뤄졌다.(금호23구역) 지원금액도 신청금액 7억6300만 원의 20% 가량인 1억4천만 원이었다. 출구전략이 마련된 후 2014년 2월까지 해산된 추진위는 23개이다. 해산된 추진위 중 지원 신청을 안 한 곳도 있고, 지원신청을 해도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검증결과 증명할 수 없는 금액도 상당히 많은 것이다.
시공사의 대여금 포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집행이 안 되고 있다. 행정실패를 인정한 행정청과 달리 시공사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적으로 손해인 대여금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인데 이 돈의 80%를 포기하라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에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시공사는 대여금에서 연대보증인 가압류 등을 통해 회수 가능한 금액과 불가능한 금액을 철저히 계산할 것이며 회수 가능한 금액이 대여금 포기를 통해 보전 받을 법인세 감면액 보다 작다고 판단되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매몰비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선뜻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나마 풀 수 있는 실마리는 행정청 등 공공기관에 있다.
시공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매몰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두고 관계자 사이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 불신과 갈등이 팽배한 상황에서 협의를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협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으로 나오게 하고 조정하는 것 모두 공공기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것 보단 협의하는 게 모두에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도 협의는 필요하다.
매몰비용 지원에 있어서도 비리 문제는 사법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사법부라는 공공기관이다. 반면 불투명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선 이 또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
법적인 틀 안에서만 움직이고 법적인 잘잘못만 따지는 것은 때론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매몰비용에 대한 논의는 법적인 책임보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이란 관점에서 접근된 것이다. 불법을 행하자는 게 아니다. 법의 판단 너머에 있는 법 취지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매몰비용은 공동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것을 푸는 것은 공공의 책임이다.
전문수 나눔과미래 간사(재개발행정개혁포럼 사무국장)
**각주
1) 뉴타운 사업은 정확히는 기존의 개발사업 가운데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지정된 사업이다. 하지만 여기선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의 도시정비사업에 대해 사람들이 세분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뉴타운이라고 부르는 것을 감안하여 최근의 도시정비사업을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2)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의안번호 1814484.
3) 사당1구역은 이후 조합에서 조합설인가 취소 처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이며 이에 대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4) 특별히 구분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편의상 이후 추진위와 조합을 구분하지 않고 조합으로 표기한다.
5) 서울시는 2013년 시범사업 성격으로 4개 정비사업 조합에 대해 실태를 점검한 뒤 “방만함과 부조리, 비리의혹이 다수 드러났다”고 발표했으며, 후속 조치로 2014년 6월 ‘서울시 정비사업 조합 등 예산·회계 규정’을 만들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