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주거복지의 만남, 시장 구조 개편이 먼저다
페이지 정보
나눔과미래 16-07-15 15:33본문
지난 4~5일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주최한 제4회 주거복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대주제는 ‘시장과 주거복지'였다. 발제자들의 논지는 점점 심각해지는 주거문제로 인해 공공 영역이나 복지 영역만으로는 커져 가는 주거복지 요구를 감당할 수 없고 시장과 복지가 결합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과 복지라는 상충되는 듯 보이는 두 영역을 엮으려는 시도에 불편한 시각도 있었지만 논의해 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의를 듣는 내내 아직은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장과 복지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너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은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가진 비정상적인 구조에서 기인한다
먼저 공급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주택 시장은 대형 건설사에 의한 대규모 공급 중심 구조다. 이는 최대한 빠르게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정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재개발사업을 보자. 재개발사업구역 1곳의 평균 면적은 4만3천m2이다.(2012년 서울시 발표자료) 이 정도 공사의 경우 소규모 건설사는 사업 실패 시의 위험도로 인해 참여하지 못한다. 더욱이 재개발사업은 다른 사업에 비해 원주민 보상 등의 이유로 위험성이 큰 편이다. 이런 이유로 이름만 들으면 아는 재벌 초대형 건설사들만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기업형 임대주택인 뉴스테이를 봐도 택지, 금융, 세제 지원에 수익률까지 보장한다. 현제까지 뉴스테이를 공급한 건설사로는 대림산업, 한화건설, KCC건설, 반도건설, 대우건설이 있다. 이 역시 빠른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지원을 통해 대형건설사들에게 시장을 만들어준 것이다.
수요의 측면에서 보면 투자를 위한 가수요를 바탕으로 하는 구조다. 2010년 기준 서울시의 주택보급율은 97%이다.(전국 101.9%) 반면 자가점유율은 약 41%에 불과하다. 아주 거칠게 계산해서 주택의 56%는 가수요자 소유의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자가점유율은 1995년 이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최소한 서울에 신규 공급되는 주택의 절반 이상은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사고 있다. 이 사람들이 없이는 지금의 가격이 유지될 수 없다.
이런 시장 구조를 떠받치는 기반은 부동산을 통한 자산 형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동산은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끊임없이 집을 사고, 팔고, 빌리고, 빌려주며 사람들은 자산을 모았다. 국가는 대형 건설사를 통해 혹은 직접적인 방법(세금, 대출 등)으로 이를 지원했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산 형성을 위한 재화였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광고 문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역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젠 부동산을 통한 자산 형성의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던 전세가 사라져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꺾여 대출 받아서 집을 샀다가는 오히려 하우스푸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전세 보증금을 통한 자산 형성도,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자산 형성도 어려워진 시대다.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지금의 주택시장 구조는 무주택자와 유주택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주택자는 자산이 없기 때문에 공급되는 새 집의 구매자는 유주택자가 된다. 이 집은 월세로 임대될 것이며, 임차인은 월세 지불하느라 자산 형성이 어려워진다. 주택을 통한 계층의 고착화다. 그런데 복지가 왜곡된 구조를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시장과 손을 잡는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시장과 주거복지의 만남을 말하려면 먼저 시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
2015년 12월 14일자 한겨레 '왜냐면'에 실린 글은 이 원고의 축약본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21773.html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