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구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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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11-30 11:45본문
“쌀 받으러 왔는데요.”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이었다. 언뜻 봐도 어린 외모에 우리 센터를 찾아온게 맞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이를 묻진 않았지만 짐작으로 중고등학생 정도의 청소년으로 보이는 누나와 7~8살 동생이 함께 온 것 같았다.
그들은 이내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이름을 듣고 나서야 그들이 센터에서 사례관리 중인 이용자의 조카들인 것을 알았다. 얼마 전 문서상으로 본 그 아이들이었다. 지난주 동주민센터 통합사례관리회의 시 논의 안건으로 만난 아이들, 그들이었다.
이 아이들의 이모인 이**(55세, 3인가구/한부모가정) 님은 2012년 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분이었다. 그 당시 주민센터 의뢰로 겨울철 연탄 800장 지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사례관리 중인 가정이다. 이** 님이 연료비 지원 이후 다시 센터를 찾은 건 작년이었다.
임대인의 퇴거 종용으로 인해 당시 주거상황(보증금100/월세20만원)으로는 이사할 곳이 없어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당시 당사자는 동거남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남편과는 10년 넘게 별거하며 아이들을 돌보며 생활하고 있었고, 남편이 이혼을 거부해 법적 이혼 이 되지 않았다. 우울증이 심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삶이 막막했던 당사자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곳을 찾다가 동거남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현재 당사자는 조건부과수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당사자는 3번의 이사를 했 다.
3번의 이사, 1년이라는 시간 안에 3번의 이사를 하며 일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도 2년의 계약기간을 보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첫번째 주택>
보증금 100만원으로 이사가 힘들어 센터를 찾은 당사자 보증금 마련을 위해 센터는 외부자원을 연결했다. 사업에 선정되어 보증금 3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린 전화에서 당사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기 너머 크게 우셨다. 그렇게 첫 번째 이사를 하셨고 센터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도왔다. 어느 정도 삶의 안정을 찾은 듯 했다. 하지만 동거남에게서 잦은 폭력이 발생했고, 센터와 구청, 경찰의 개입 하에 분리될 수 있었다.
<두번째 주택>
두 번째 이사는 임대인의 퇴거종용도 아닌, 주거환경의 문제였다. 외부 후원 연결로 마련된 보증금 300만원에 울며, 마련했던 보증금 500만원 월임대료 30만원의 집, 하수구가 역류했다. 당장 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사를 했다. 저렴한 보증금과 월임대료로 구 한 민간임대시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지는 잘, 아니 거의 없었다.
<세번째 주택>
세 번째 이사. 당사자는 법적 이혼상태가 아니라 한부모가족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법제도 내에서 수급할 수 있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센터는 지역사회 복지관, 구청, 주민센터, 외부자원 등 가릴 것 없이 연계하여 당사자의 삶의 안정을 위해 노력 했다. 그리고 마침내 LH전세임대주택이 선정되었다.
당사자는 현재 LH전세임대주택 거주 중이다. 그리고 방2개의 주거공간에서 6명이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여동생의 아이들 2명을 당분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센터는 쌀을 후원하기로 사례회의에서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전 당사자의 조카 2명이 센터를 찾았다.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가져왔다. 제법 추운 날씨였다. 아이들은 약 10분을 걸어 왔다고 했다. 춥지 않냐는 말에 괜찮다고 웃기만 했다. 장바구니가 작아 쌀 10kg 2포대만 넣어 줬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10분을 걸어 집으로 갔다. 입이 늘어나 쌀까지 부족한 상황이 되어, 센터는 쌀을 얼마간 지원해드리기로 했다.
얼마 전 열린 통합사례회의에서 동주민센터, 지역사회복지관, 그리고 우리 센터가 이** 가구의 사례관리 계획을 세웠다.
세 번의 이사를 거치고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를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풀 숙제가 많다. 더구나 쌀구르마(손수레)를 손에 잡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위를 덜컹덜컹 끌며 돌아가고 있을 그들 뒷모습이 상상되어 더 무거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