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이름, 인권’_박래군 인권운동가 강연을 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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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7-03-22 16:03본문
인권은 무엇일까

인권 옹호를 위한 그의 지난 활동에서 답을 찾아 갔다. 박래군 활동가의 인권 운동은 동생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88년, 당시 민주항쟁을 외쳤던 동생인 박래전 열사가 분신을 하면서 그는 유가협으로 이끌었다. 80년대 자행된 의문사들. 의문사 진상 규명 운동을 한 그는 군부 정권에 의해 무분별하게 유린된 인권 현장을 고발했다. 그가 기억하는 또 다른 행보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운동이었다. 평택 대추리는 쫓겨난 자들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비행장 건설로 인해 원주민이 밀려났다. 공군기지로 확장 되자 주민들은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었다. 하지만 2006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박래군 활동가는 주민들과 반대 운동을 펼쳤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동은 계속됐다.
아물지 않는 생채기,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그가 가장 힘주어 이야기 했던 것은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였다.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무너지는 가장 근래의 일이자, 대다수 시민들에게 아픈 기억이지만 결코 추억이 될 수 없는, 또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장이었다.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용산 주민들의 수십년간 이루어온 삶의 터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렸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왜곡된 보상금과 정치적 색 입히기 등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가려지고 온갖 오해로 얼룩졌다. 그래서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생채기가 됐다.
차별과 평등을 지워 나가는, 촛불집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인권 현장에서 그는 인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해왔다. 세계인권선언을 언급하며 박래군 활동가는 인권이 ‘모두’의 것이라고 했다.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이다. 때문에 어떠한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도 인권의 무게를 결정지을 수 없다. 헌데 민주주의가 당연시되는 오늘 사회에서 계급의 민낯이 들어났고 이것이 촛불이 켜진 이유가 됐다. 박래군 활동가는 집회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촛불 집회 키워드를 물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는 차별-평등-민주주의 순이었다. 1500만여명의 사람들은 차별 없는, 평등한 그런 한국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기대했고 염원했다.
공감, 관계의 회복 그리고 인권

그렇다면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박래군 활동가는 약자에게 ‘공감’하고 인권의 불평등한 관계를 회복해 가야 한다고 했다. 공감은 곁을 지키는 것이며 경쟁이 아닌, '협력'이 될 때 사회 곳곳의 어그러진 관계가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차이를 강조하고 차별하는 한국 사회에서 활동가에게 필요한 인권감수성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는, '역지사지'다. 이러한 인권감수성은 비단 활동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닐테다. 사람으로서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 서로의 권리를 위해 손을 잡고 어깨를 맞닿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인권감수성을 키워나가는 것. 우리 모두의 인권을 위한 연대다.
* "정말 찾아서 읽으실 거죠?" 박래군 활동가님이 묻고 또 물으셨던, '세계인권선언 30조.' 정독했습니다(ㅋㅋ)
* 박래군 활동가님 강연 동영상은 추후 자료실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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