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주거복지센터] 그 해 겨울, 최어르신과 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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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7-04-28 09:47본문
행정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서울시내 쪽방 수는 약 4,300여개이다. 그리고 평균 3,700여명이 장기거주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어진 지 40여년 된 건물에 1평 남짓한 방, 부엌이나 화장실, 샤워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도 쪽방은 기초생활수급자, 건설일용노동자, 행상 등 비공식부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보증금 없이 일세나 월세로 지낼 수 있는,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거처이다.
서울의 경우 쪽방은 종로역 인근, 서울역 인근, 영등포역 인근 등 도심 내 교통이 편리한 곳에 밀집해 있다. 그러다보니 개발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다반사. 최근 들어서는 오피스빌딩에 근무하는 회사원들의 커피숍으로, 몰려드는 유커들의 게스트하우스로 쪽방 건물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임대인이 하나 둘씩 매각한 이후 입주자에게 무조건 퇴거를 요청하고 거처를 정리해버리면 사실 집단적인 대응도 쉽지 않는게 현실이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지역. 속칭 동광(예전에 동광시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벽돌과 아궁이 재료를 판매했다고 한다)이라고 불리는 곳에 거주하는 어르신이 주거복지센터로 전화를 주신 건 1년 여쯤 겨울이다.

“집주인이 나를 쫓아내려고 해요. 이 건물이 팔렸으니 나가달라, 아니면 3개월 치 밀린 방세를 전부 내라... 내가 기초수급 받기 전에 밀렸던 방세가 있었거든요. 그걸 한꺼번에 해결하라고... 며칠 전에는 해머를 들고 와 살림을 부수더니 그제는 방문까지 부수고 갔어요...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는데... 도와주는 곳은 없고 몸은 약해져만 가고요...”
얼른 대응해야겠다 싶어 바로 다음 날 아침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와 함께 어르신을 뵈러갔다. 어르신은 2009년부터 쪽방에 거주하셨단다. 이전엔 일반주택에 살았는데, 장사하면서 생긴 빚으로 가족까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혼자 행상을 하다 건강도, 형편도 안 좋아지면서 이곳 종로 쪽방까지 오게 되셨다고 한다. 쪽방에서 좌판이나 행상으로 번 돈으로 하루하루 방세를 지불해왔는데, 월세가 3개월까지 밀렸었단다. 결국 수급신청을 하게 되었고, 2013년 수급가구가 된 이후 밀리지는 않으셨단다. 그렇지만 이전 체납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기초생활 수급비 50여 만원으로 쪽방의 월세 23만원을 내고 나면 한달 살이가 참 버거우셨을 게다.
골목을 들어설 때 어르신 방이 있는 건물 입구는 철문과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건물이 팔렸으니 당신 나가라”며 어르신이 외출한 사이 임대인이 걸어두고 갔더란다. 짐도 있고 갈 곳이 없어 며칠 말미를 달라며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틈만 만들어두셨다고 하신다. 어르신의 방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며칠 전 해머를 들고 와 그나마 있던 미닫이 나무 문을 부숴 큰 구멍까지 뚫려있었다. 그 며칠 전 부순 집기는 한 켠에 놓여있었다.

건물이 팔렸으니 나가라는 임대인의 말에, 그간 같은 건물에 거주하던 다른 입주자들은 하나 둘씩 짐을 쌌지만 할아버지는 버티셨단다. 이렇게 사는 것도 억울한데 사람취급도 못 받는 게 억울해 틈틈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공부하면서 '내가 나가지 않는 것은 법에 명시 된 권리다. 이렇게 나가는 건 내 권리를 포기하는 거다'라는 걸 아셨단다. 그리고 전기와 가스를 끊어버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임대인에게 맞서며 지금까지 버티셨단다.
최근 쪽방의 임대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건물이 노후했으니, 건물이 팔렸으니...’ 등의 이유로 세입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라”고 한다. 돈없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내쫓기고 부유할 뿐이다.
하지만 어르신은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 몸부림치고 계셨던 거다. 비록 입구가 막힌 건물이지만, 찬 바람하나 막아주지 못하는 구멍 난 방문이지만, 이곳은 임대료를 낸 내 방이고, 내 몸 하나 뉘일 곳은 여기 뿐이고, 내가 의지할 이웃이 있는 곳도 이곳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아, 이 엄동설한에 조물주 위 건물주와 홀로 대응하려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어르신은 우리와의 만남 이후 싸움을 조금씩 정리하셨다. 추운 겨울을 이겨낼 방법을 찾았고 임대주택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년 쯤 지난 뒤 주거취약계층 전세임대주택을 구해 그 동네에 머물게 되셨다. 지난 겨울 어르신은 판매하는 옷 중 좋은 옷 두벌을 주고 가셨다.
“얼어 죽게 되었을 때 나를 건져주신 큰 은인이십니다. 죽을 것만 같았는데 애써주셔서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 고마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라는 편지와 함께.
쪽방지역에서의 세입자의 퇴거는 대규모로 혹은 소규모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져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르신의 바람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다. 작지만 내 방, 내가 익숙한 곳, 내가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다.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바람, 나 소득에 지불 가능한 괜찮은 집, 그 집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장하는, 그런 나라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성북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