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마을] 노숙인 쉼터에서 만난 '마을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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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7-07-06 10:36본문
택배 일을 하는 입장으로 누구보다 날씨에 민감하다. 요즘 같은 여름 장마철이나 겨울철 눈 오는 날에는 배송이 더욱 힘들다. 그래도 이렇게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생각으로 새벽 집을 나선다.
나는 사회적기업 (주)살기좋은마을의 '마을택배'에서 일하고 있다. 택배 일은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성북구 길음동, 보문동 일대에서 물건을 배송한다. 2015년 11월에 입사했으니 몇 개월 후면 만 2년을 채운다.
택배 일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여년 전 20대 때 8년간 택배 일을 했다. 당시만 해도 택배 초창기였고, 지금보다 경쟁이 덜 치열해 마진도 괜찮았다. 차라리 그때 그 일을 계속했더라면….
사업실패로 돈도 의지도 잃었다. 다른 사업을 하다가 2014년 문을 닫았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붙은 채로 거리로 내몰렸다. 돈뿐만 아니라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6개월 동안 거리를 전전하며 피폐한 삶을 살았다. 노숙인 쉼터라는 곳이 있었지만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지 못해 서울역 노숙인 쉼터에 입소했고, 이어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자활센터인 서대문사랑방으로 옮겼다. 쉴 곳이 정해지자 6개월간 누적된 피로가 내 몸을 괴롭혔다. 자활을 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었다.
몸이 어느 정도 나을 무렵 사랑방 사무실에서 택배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때 살기좋은마을 오범석 대표님을 만났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택배 방식이 예전에 했던 것과 달랐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배송을 하는 거라고 했다. 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니 크게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택배 일을 시작했다. 20여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몸은 택배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빠르게 적응이 되었고, 사그라들었던 재기의 의지도 서서히 되살아났다.
내 일터가 좋은 점은 어르신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이다. 입사할 때 20여명이었던 어르신들이 이젠 40여 명으로 늘었다. 매일 아침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르신들과 함께 배송을 한다. 이분들과 하루에 소화하는 물량은 3천개 정도이다.
이제는 살기좋은마을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각 택배사의 물량을 모두 취급하는 통합택배, 택배와 결합할 수 있는 신규 사업 등을 고민한다. 오범석 대표님을 비롯한 구성원들과 이런 고민을 나누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한 1년 7개월은 재기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낀 시간들이었다. 살기좋은마을이 더욱 성장해 나락으로 떨어졌던 더 많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택배를 통한 성공적인 자립 모델을 만들고 싶다.
오후 7시, 하루 일과가 끝났다. 장마철이지만 오늘은 비가 멈췄고, 하늘은 맑았다.
김성민 (주)살기좋은마을 영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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