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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마을]옥상꾸미기 시리즈 1/3 : 일상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실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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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7-07-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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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꼼꼼히 들어봐야 하는 것이 보통은 ’내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냐 하면 그건 좀 생각해 봐야 하지만‘이라는 어미가 생략된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마을의 옥상 꾸미기 또한 ’하면 좋겠다‘는 말 외에 누가 얼마만큼의 공력을 쏟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공감대가 없었다. 사업제안서를 쓸 당시 이점을 간과한 나의 주의력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다행히도 청년마을 입주민들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함께 하자고 요청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전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 지체하던 나에게 먼저 나서서 이제 좀 논의도 하고 일도 시작해야 하지 않냐고 물어봐 주셨다. 나는 힘을 받아 내친김에 당장 시작하자고 했고, 그때서야 추진반(적극적으로 나서 추진 해 나가는 사람들)을 꾸려 첫 회의를 갖게 되었다.

 

  눈에 잘 보이는 사업의 과정과 결과는 옥상 공간의 물리적 변화지만, 내가 본래 목적으로 한 것은 성공적으로 협력, 협의하는 경험과 성취감이었다. 논의하고 협의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려운지도 모르니 회의 준비고 뭐고 제안서만 가지고 일단 모였다.

 

  엔지니어(?)의 역할도 해야 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떻게 하자‘는 내용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나 내가 주로 했던 역할은 자기 머릿속의 일부만 꺼내는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묻고 또 묻는 것이었다. 다수가 논의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누군가의 말이 두루뭉술하거나 알아듣지 못해도 선뜻 재차 묻지 않는 관성을 깨고 싶었다. 나의 경험으로는 그런 자리에서 단 한 차례라도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건너뛰게 되면 그 후에는 걷잡을 수 없게 스스로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는 의견의 표명을, 또 구별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논의에 참여하는 모두의 의견이 일정한 적극성을 띌 수 없다. 나는 ‘조용한 사람들’에게 발언 유도를 나름대로 시도하다가 사업 기간에 맞추어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 생각 해 보니 논의하는 방법과 결정하는 방법에 동의를 하면 될 일이다. 다시 또 머리를 맞대고 진행 할 일들에 나선다면, 또 거기에 새로운 참여자가 들어온다면 나의 역할은 확실하다. 사안에 걸맞는 논의, 결정 체계의 발명과 이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