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상가에서 도심재생을 고민하다
페이지 정보
나눔과미래 17-10-30 10:24본문
도시재생의 목표는 침체된 도시의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일으켜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을 봐도 신도시 개발, 뉴타운과 재개발로 대표되는 전면철거형 정비사업의 틈바구니에서 면적이 좁거나 사업성이 낮아 제외된 노후 주거단지나 상업지역, 공단이나 항만 등 과거에 번성했지만 이제는 공장 이전 등으로 기능이 쇠퇴한 산업중심지역에 정체성과 기능을 부여하거나 예전의 활력을 되찾게 지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런 취지에 비춰보면 재생사업에서 인구규모에 비해 부족하거나 낡아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로, 상하수도, 교통망 등 도시 기반시설을 확충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당성이 있다. 그런 부분은 도시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의 근린재생 사업구역이나 경제기반형 사업구역을 방문해 보면 도시재생사업이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불요불급한 기반시설 정비공사외에 사업예산의 상당부분이 앵커시설의 신축, 국공유지나 기존 청사부지의 복합개발 등에 투입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낡은 주택과 상가, 시장, 기타 산업시설물의 형태와 기능을 민간의 책임과 정부의 지원을 효과적으로 융합하여 점진적으로 개선해 가는 것이 재생사업의 원래 취지이다. 하지만 현실의 재생사업은 토지매입과 신축, 또는 그에 준하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사실상 전액 정부, 지자체 예산의 투입을 통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공간의 기능을 다시 살리는 방법으로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는 것 보다는 낡고 침체된 공간의 가치를 다시 찾아내고 활력을 부여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최근 충무로역 바로 앞에 있는 진양상가를 방문했다. 같은 중심시가지형 활성화사업지역에 속해 있는 세운상가에 상대적으로 비해 덜 알려져 있는 건물이다. 대표업종인 꽃상가가 잘 알려진 1970년대 초반에 건축된 대형상가로 상층부에는 낙원상가와 유사하게 아파트가 있는 고밀건축물이다.
<진양상가의 관리된 정면 경관과 대비되는 낡은 이면의 모습>
진양상가의 입지조건으로 눈에 띄는 면은 수천 곳의 인쇄관련 영세업체가 밀집해 있는 충무로, 을지로, 오장동 일대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재생 활성화구역에 이어 올해 인쇄특구로 지정되어 침체된 산업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현장에서 듣기로는 인터넷의 확산과 활자문화의 위축이라는 큰 흐름과 파주출판단지 조성, 홍대 인근으로 중소출판사 등 유관업체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후에 현장에서는 상당한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인들의 기술력과 기획, 디자인, 종이 등 다양한 유관 업종과 업체 간에 오랜 협업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인쇄 분야에서의 위상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가 저층부는 건물의 노후화, 온라인 거래비중의 증가와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예전에 비해 위상이 축소되어 무상임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꽃상가 외에는 뚜렷한 대표업종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종로의 핵심부에 위치한 유리한 입지조건과 높은 인지도에 다양한 청년 스타트업 유입, 상품 개발에서 제작·유통까지 책임지는 메이커 시티(Maker City) 유치라는 새로운 거점시설을 갖추고 변화를 도모하는 같은 구역의 세운상가와 비교할 때 재생사업의 방향성을 더 찾기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상가 상층부에 위치하고 있는 아파트는 오래된 건축년도와 관리부실 등으로 공용부가 상당히 쇠퇴되기는 했지만 매력적인 요소도 엿보였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은 층별로 조성된 넓은 공유공간과 과거 아동의 추락사사건으로 모두 막아놓긴 했으나 중정을 가지고 있다.
중간층에 있는 넓은 옥외 마당공간은 과거에 놀이터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민들의 휴게공간과 텃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심의 한가운데 위치한 아파트에서 상자텃밭과 고추를 말리고 있는 경치를 만날 수 있어서 특이했다.
옥상에서 내다본 충무로 일대의 낡은 건물은 소규모 필지위에 제각각인 지붕구조와 좁은 골목길에 닥지닥지 들어앉아 있는데 대부분 인쇄관련 업체의 사업공간이다. 지난 수 십 년간 이 곳에서 생계를 영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인쇄 장인들과 생산, 유통, 판매, 배달과 같은 유관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터전이다.
진양상가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임대료조차 낼 수 없거나 받을 수 없을 정도의 침체를 겪고 있는 3층의 꽃상가와 공간의 상당부분을 무도장이 차지하고 있는 2층상가가 공간, 기능적으로 재생된다면 충무로 일대 인쇄 영세업체의 허브가 되어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거점으로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충무로의 인쇄를 되살리겠다고 기존 재생사업지에서와 같이 넓은 땅을 사서 새로운 거점시설을 만드는 방식으로 근처의 땅값을 올리고 쇠퇴된 대형상가인 진양, 신성상가는 계속 방치하는 방식은 부적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쇠락한 상가공간을 살리면서 인쇄산업의 생태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역내 합의에 기반하여 컨텐츠를 찾고 실험하는 장으로의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인 재생방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거대한 거점시설을 신축하지 않고 낡은 창고, 역사, 항만, 공장과 주택을 고치고 다시 활용하면서 도시재생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든 영국 등 유럽지역의 사례도 참고가 될 만하다.
젊고 창의적인 메이커와 기존 기술 장인간의 협업 방안이 재료 구입, 시제품 제작 등으로 다소 제한적일 수 있는 세운상가의 재생 컨셉과 비교할 때 지역에 뿌리내린 활성화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더욱더 필요하고 기대도 된다. 인쇄산업의 고질적 문제인 대형 합판업체의 이익 독점과 하청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공익적 성격을 가진 사회적경제 기업의 입주 공간과 디자인과 기획 등 인쇄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창업자의 협업공간 등이 구상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상상도 지역사회의 몫이고 합의와 공동실천이 뒷받침이 되어야 현실화될 수 있다. 인쇄업의 메카, 충무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사업자와 도시재생 활동가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남철관 나눔과미래 주거사업 국장
- 이전글[기자회견] 서민 주거안정 위한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제도·후분양제 즉각 도입 촉구 17.11.15
- 다음글지역자산화(시민자산화) 현장을 살펴보다 17.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