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주거복지센터] 정릉동, 캣대디의 집 찾기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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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7-09-22 13:12본문
8월 한 달.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매일 전화를 하신다. 어떤 날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하루에 여러 통씩 전화를 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집은 어떻게 됐어? 나 이사 갈 집 찾고 있어?”
당사자는 정릉3동 주택가에 차로 들어가기도 힘든 위치에 전세로 7년째 거주 중인 68세(이**), 남성 노인 단독가구다. 당사자는 임대인이 집을 판다며 당장 내일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퇴거요청으로 긴급하게 지원요청을 했다. 주거복지센터는 구체적인 상황파악을 위해 해당 동주민센터에 추가적인 가구상황 문의 후, 바로 다음날 해당 가구를 방문했다.
주택은 차로 진입이 불가한 골목 안 깊이, 2~3층 높이의 계단 위에 위치한 단층 주택이었다. 동네 깊숙이 위치한 그 주택이 매매가 될까 싶은 아주 낡고 오래된 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그마한 마당을 중간에 두고 2개의 집이 마주보고 있고, 당사자(임차인)의 집과 임대인의 집이 작은 마당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집이다.
임대인의 퇴거요청으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는 당사자의 사정은 이랬다. 당사자는 2010년부터 현 주택에서 전세(보증금 1,000만원)로 거주했다. 그리고 더 예전인 1975년 결혼을 했고 정릉에 자리를 잡았다. 슬하에 자녀도 있었고, 그 시대 아버지들처럼 닥치는 대로 일했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약 20년 전 가족이 해체되었고 지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일반수급을 유지하며 혼자 살고 있다. 그런 당사자에게 유일한 벗이 되어주는 것들이 있다. ‘고양이’ 와 ‘술’.
“사람은 다 도망가고 없지만, 고양이들은 안도망가.”
“내가 친구가 없잖아. (술이) 외로울 때 유일한 친구야.”
당사자는 정릉에 약 40년 거주해 주변에 친구도 지인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나기만하면 본인에게 힘든 이야기,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들만 해서 이제 아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당사자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길고양이들 밥을 주거나, 집 앞 텃밭을 가꾸거나, 술을 마신다.
당사자 집과 마주보고 있는 임대인의 집에는 노부부가구가 살고 있다. 당사자와 서로 비슷한 연배인 임대인 할아버지는 근처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하고, 할머니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말동무가 필요한 할머니와 당사자 할아버지는 친구가 되었고, 함께 술 한 잔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임대인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가 당사자 때문에 술을 먹게 되었다 판단하고 퇴거요청을 한 것이다.
임대인도 임차인도 화가 났다. 당사자(임차인)는 당장에 이사를 가겠다며 주거복지센터에 지원요청을 했다. 임대인의 퇴거요청 이후 화가 나고 속상해 본인이 심어놓은 텃밭의 고추나무도 다 뽑아버렸다. 오랜 기간 함께 지내온 임대인 할아버지에게 당사자는 화가 단단히 났다. 당사자는 무조건 이사를 원했고, 주거복지센터에 이사할 주택을 찾아달라는 것이 주요욕구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매일같이 통화하고 상담했다. 하지만 주택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령의 당사자 혼자 거주한다고 하면 임대인이 집을 임대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현재 전세 보증금으로 이주할 주택은 전무했다. 대부분의 주택이 월임대료를 추가로 받길 원했고, 당사자가 부담 가능한 수준의 월임대료 수준의 집을 찾기도 했으나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주거복지센터는 당사자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임대료 부담가능한 수준의 주택으로의 이주를 돕기 위해 전세임대주택 즉시지원제도를 안내하고 주민센터를 통해 신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약 20년 전 헤어졌던 부인과는 법적 이혼이 되어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신청이 불가한 상황에 놓였다.
전세임대주택 신청을 위해서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민등록을 달리하는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의 자산 및 금융조사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의 생계․주거급여 수급자로 전세임대주택 신청 1순위에 해당하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약 20년 전 관계단절 된 배우자의 동의를 얻지 못해 신청조차 불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사실 이혼 인정 및 가족관계 단절을 인정받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보호를 받는 수급권자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주택특별법에는 적용되지 않아 연락도 닿지 않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와야 접수 가능한 모순적 상황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사례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하는 저소득가구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구청 또는 동주민센터의 적극적인 행정지원(가족관계 단절 증빙서류 제출 등)이 없을 시 방법을 찾기 힘들다.
당사자는 이후 공공임대주택 신청을 위해 몇 가지 행정절차를 진행했다. 주거복지센터는 일반 민간임대주택으로의 이주를 위해 주택물색을 지속했다. 하지만 마땅한 주택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고, 이러한 과정에서 다시 당사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임대인과 상의하여 월임대료를 조금씩 부담하기로 하고 현 주택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초기상담 후 약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당사자는 상담을 하면서 무조건 이사를 가겠다, 현재 주택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령의 당사자는 본인이 오랜 시간 머물렀던 거주공간이 임대인의 퇴거요청 한마디로 없어지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화가 많이 컷을 것이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본인이 먹을 쌀보다 고양이 사료를 더 자주 사고, 집 앞 작은 텃밭에 고추모종을 심어 기르던 애착이 묻어있는 공간을 떠나는 것이 불안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전화하던 당사자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가구방문 온 우리 활동가들을 붙잡고 본인 앨범을 보여주며, 젊었을 적 자신의 삶과 사진, 시, 글귀들을 보여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할아버지. 한 달 동안 매일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시던 할아버지와의 여름이 끝났다.
매일매일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전화 상담에서 전화 끊기 전 ‘내가 외로워서 그래’, ‘집에 와준게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요’라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집 찾기는 약 한 달의 짧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우리 주거복지센터는 이후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이주를 위해 해당가구 상황을 점검하고 공공임대주택 신청까지 사례관리를 지속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