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택의 미래를 엿보다-프란츠 슘니치 (Franz Sumnitsch) 방한 토론회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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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8-05-23 11:34본문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대표적인 코하우징으로 알려져 있는 자그파브릭의 설계자인 Franz Sumnitsch(프란츠숨니치)와 함께 한 해외연사 초청 사회주택 포럼(2018.4.20)은 사회주택, 공동체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형태의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인 서울시와 한국사회에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해 주었다.
먼저 집과 이를 둘러싼 정책, 제도는 거주에 대한 사회의 가치관과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는 그 사회만의 고유한 철학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무대로 활동하는 숨니치씨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을 위한 건축, 사용자를 위한 건축, 도시를 위한 건축으로 표현되는 그 사회의 철학은 사회적 지속가능성, 즐거움이 동반된 참여, 영감에 기반한 도시 정체성의 구현을 각각 대변하는 개념이다. 주택공급 정책이 이러한 철학에 기반하기 보다 건설호수, 주택보급률, 건설시장을 통한 경기부양을 명시적, 암묵적 지향에 근거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다시금,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 사람과 커뮤니티를 위한 주거는 어떤 가치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적 숙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00여 년에 이른 비엔나의 사회주택 정책도 많은 부침을 거듭했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고, 이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사회주택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오스트리아의 사회주택은 공공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지불가능한 주택이 될 수 있었다. 일반 민간 임대주택이나 자가소유 주택과 대비할 때 동일조건의 토지를 약 15% 정도의 가격에 공급하는 정책은 안정된 임대료에 높은 품질을 갖춘 사회주택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제한된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조직의 성격으로 일반주택 대비 20% 정도 저렴한 건축비용과 세제해택, 낮은 마케팅비용 등이 더해지면서 조성비용이 50%이하로 내려가면서 낮은 임대료가 책정될 수 있다. 공공의 지원이 고스란히 사회주택 입주자의 안정된 거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세수준의 감정평가액에 기초한 임대부 방식의 토지 공급으로 시세대비 80%이하의 임대료를 책정하기에도 버거운 우리의 정책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제한적 영리나 비영리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조직이나 비영리조직에게 공시지가 등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낮은 임대료는 수요가 많은 대도시 지역에서 사회주택이 우선적으로 공급되어야 하고, 토지비가 사업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공공부문이 민간에게 저렴한 토지를 필요한 지역에 적정한 규모로 공급할 수 있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숨니치씨가 소개한 오스트리아의 관련 정책에서 또 흥미로운 점은 사회주택용 필지의 규모가 크고 개발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업자의 선정과정이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다양한 기금이 조성되어 있고 건축, 설계, 커뮤니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관련조직이 협력적으로 참여하는 공정한 공모절차를 통해 사업자가 선정되면 최장 30년간 공적기금(Public Credit)이 제공되고 대여와 상환이 순환적으로 이루어져 공적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배경하에 커뮤니티를 고려한 공간구성, 부담가능한 임대료 책정, 다양한 계층과 지역을 배려하는 주택공급이 가능해 진 것이다.
사례로 제시된 주택 계획을 보면 커뮤니티와 관련해서는 버려진 공장을 사회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등 지역재생이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측면과 입주자 참여형 설계를 거쳐 사업주체가 입주자와 지역사회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두고 있는 점이 눈이 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충분한 공간을 배치할 수 있었고, 자유로운 모임이 가능한 공간, 공동식당과 세탁시설, 10대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열린 활동공간, 도서관이나 공연장과 같은 교육, 문화공간을 다채롭게 배치하고 있다.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을 위한 일종의 그룹홈을 주택내에 혼합 배치하여 지역복지의 이슈에 대응하는 사례는 사회주택이 지역사회의 일원이고 공간의 활용 뿐 아니라 사회적약자에 대한 커뮤니티 케어라는 적극적인 목표도 추구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세미나룸, 레스토랑, 헬스시설, 수영장과 같은 여가, 편의시설은 운영능력을 갖춘 외부조직에게 임대하여 입주자와 지역주민이 시세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점도 흥미롭다. 아울러 옥상정원의 활용, 베란다 녹화를 통해 녹지가 부족한 도심의 사회주택 거주자가 친환경적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주택의 입지나 대상자에 따라 입주자를 먼저 모집하여 참여형 건축을 하거나 먼저 건물을 짓고 입주자를 모집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하고 있는 점은 축적된 주택조성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숨니치씨는 사례 소개를 종합하면서 오스트리아 사회주택 사업의 특징으로 입주자 중심성,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다양성에 대한 고려, 공간에 대한 컴팩트한 설계, 에너지 세이빙, 공정한 임대료를 제시하였다.
한국의 사회주택 정책은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정도의 단계이기 때문에 선진적인 사례가 주는 정책적 시사점을 한꺼번에 흡수하여 실현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부분적 성공의 경험, 공익적 목적에 충실한 민간주체의 커뮤니티 기반 소규모 주택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빠른 정책 전개 속도를 감안할 때 미래는 밝다. 포럼을 통해 사회주택을 통해 주거약자가 적절한 환경을 갖춘 부담가능한 주택에서 오랜시간 안정적으로 거주 할 수 있는 한국적 사회주택의 모델이 멀지 않은 미래에 정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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