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주거복지센터] "고립된 섬에서 다시, 함께 사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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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25-05-28 10:27본문
40년간 살아온 성북구 정릉골, 재개발구역 지정에 따른 갖은 퇴거 압박에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을 때 구청을 통해 *전세임대에 선정되신 분이 계십니다. 스스로 집을 찾기 위해 목발을 짚고 홀로 여러 곳을 찾아다녔던 그 분의 여정은 외롭고 고단했습니다. 공인중개사도 임대인도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감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 시점에 가장 절실했던 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의 동행이었습니다.

첫 만남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추운 겨울, 문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방에서 몸 하나 제대로 누울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지내던 그 분은 당뇨합병증으로 이미 한쪽 발목을 절단한 상태였습니다. 법원에서 방 출입문에 보란 듯이 부착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 고시문>은 당사자의 심리적 압박감을 더했습니다. 날 선 말투에는 오랜 외로움과 상처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내면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최대한 ’꼰대‘가 되지 않으려 애썼고, 휘성 노래를 줄줄이 이야기하며, 페이스북 친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그분은 누구보다 소통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힘든 발걸음으로도 병원 갈 때마다 이웃의 시장을 대신 봐주기 위해 가방을 메는 모습은 그분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웃들이 하나둘 떠난 ’고립된 섬‘을 탈출하여 인간다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이 절실하다 느껴졌습니다.
‘같이 집을 찾아보자’는 다짐부터 계약까지
정든 정릉동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계단 없는 단독 1층 집이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함께 센터 차량으로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하지만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집을 찾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남은 발도 위태로울 수 있다며 입원을 권했지만, 당사자분은 “괜찮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지만, 300만원 이상의 부족한 보증금은 또 하나의 벽이었습니다.
정릉골에 오래 거주한 터라 주거이전비 대상이었지만, 계약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당사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이사를 간 후에, 집정리가 다 된 것을 보고, 2개월 후” 주거이전비와 동산이전비(이사비)를 준다는 조합의 방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눔과미래에서 진행 중인 ‘든든한 주거복지기금(소액보증금 대출사업)’의 도움으로 주거이전을 위한 임대차계약을 할 수 있었고, 비로소 이주할 준비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십니다.
집을 구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다’던 당사자분은 이제 감사의 마음을 전하시며 “자원봉사라도 좋으니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달라”고 하십니다. 전기 기술 자격증을 꺼내 보여주시며, 도배·장판·수도 모두 자신 있다며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진심 어린 말씀은 새로운 삶을 향한 의지로 가득했습니다. 아직 정릉동에 남은 이웃들을 걱정하며 “그분들도 좀 살펴봐 달라”는 말씀에서 어르신이 여전히 공동체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일상에 필요한 물품도, 생활을 안정시킬 기반도 부족한 상황이라 우리 센터가 함께 준비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주택임대차계약을 위한 행정동행
‘주거’는 삶의 시작점입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주거는 단순히 지붕과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을,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주거복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문 앞까지 동행하는 따뜻한 발걸음, 복잡한 절차를 함께 풀어나가는 손길, 이삿날 함께 흘리는 땀방울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힘을 내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3월부터 성북주거복지센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출발점에 선 미약한 시작이지만, 사람을 중심에 두는 주거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더 가까이, 더 정성스럽게 당사자에게 다가가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한 동행을 이어가시는 나눔과미래 활동가분들을 응원합니다.
성북주거복지센터 박형선 활동가
*전세임대주택 : 도심 내 저소득계층 등이 현 생활권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대상자가 거주를 원하는 주택을 물색하면 SH/LH가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