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서] “국가는 주거취약계층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야 한다 — 공공임대주택 ‘질서유지 의무’ 조항 신설에 대한 반대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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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25-06-13 13:18본문
사단법인 나눔과미래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이하 ‘개정안’)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사유로 반대의 뜻을 밝히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합니다.
이번 개정안은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에게 ‘쾌적한 주거생활과 질서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임대인이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부 내용으로는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거나 쌓아두는 행위 ∆소음, 악취 등으로 이웃 주민에게 불편을 주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 ∆폭행, 폭언 등으로 이웃 주민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불안을 조성하는 행위 ∆그 밖에 공동생활의 평온과 질서를 현저히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합니다. 이 조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취약계층의 주거권 및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1. ‘질서유지 의무’ 조항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퇴거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은 ‘소음, 악취, 불편을 주는 행위’ 등 추상적 기준에 따라 임차인에 대한 재계약 거절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조항은 겉으로는 일반적인 질서유지를 명분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정신질환자, 장애인, 노인, 1인 가구, 이주민, 여성가장 등 일상생활에서 주변의 편견이나 민원의 대상이 되기 쉬운 사회적 취약계층을 겨냥하는 조항으로 작동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이미 차별과 배제에 노출된 이들이 공공임대주택이라는 마지막 주거 안전망에서조차 내몰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이중차별이자, 구조적 폭력입니다.
2. 주거권은 선택이 아닌 국가의 책무이며,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주거권은 대한민국 헌법 제35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를 보장할 법적·정책적 의무를 집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그러한 국가의 의무를 망각한 채, 생활상 갈등을 주거권 박탈로 처리하려는 반인권적 접근을 담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존엄한 삶의 최소 조건이며 복지국가의 마지막 책임선입니다. 불편을 이유로 이탈시키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지원체계를 통해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 정부의 책무입니다.
3. 주거약자 보호와 주거권 보장을 중심에 두는 정책 기조로 전환하라
본 개정안은 ‘불편’이나 ‘질서’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임차인의 권리를 제한하지 말고,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문제행동으로 인한 공동체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벌적 조항이 아닌 갈등 중재 및 상담지원 체계의 강화, 임차인 자치 및 협의기구 활성화, 사회복지 연계 서비스 제공 등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거권 제한에 해당하는 조치는 법률에 분명한 근거를 두고, 불복절차와 구제절차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번 개정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주거권 및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약할 수 있으며, 사회적 낙인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위험한 조항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개정안을 철회하고, 주거취약계층의 권리 보호 및 주거복지 향상이라는 공공임대주택의 설립 취지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국가는 주거취약계층의 불편한 이웃을 내쫓는 주체가 아니라, 그들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2025년 6월 13일
사단법인 나눔과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