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주거복지센터] 우리 땀방울로 지워낸 곰팡이, 아기에게 깨끗한 숨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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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26-05-27 15:21본문
태어난 지 겨우 9개월,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기와 20대 초반의 젊은 부부. 그리고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대부분 시간 누워계시는 50대 중반의 할머니와 열 살 된 노견. 오래된 다세대주택 4층, 작은 방 두 칸에는 서로의 체온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삼대 네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가정의 흔들리는 일상을 지키고,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아기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선물하기 위해 성북주거복지센터는 정릉신협,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주한지협동조합과 함께 주거환경개선을 시작했습니다.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연대의 시작
도배와 장판을 교체하기 위해 살림살이를 옮겨야 했습니다. 일손을 보태고자 활동가들 몇 명이 부랴부랴 이사짐 박스를 챙겨 예진(가명)이네 도착했습니다. 예진이의 집은 세월의 흔적을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12년 전 LH 전세임대로 입주한 이래 단 한 번도 바꾸지 못한 도배와 장판, 그리고 켜켜이 쌓이 살림살이들. 10년 넘게 묵은 먼지와 장롱과 천장 위로 거뭇한 곰팡이가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아기의 아토피를 악화시키고, 아픈 할머니의 호흡기를 위협하던 주범이었을 겁니다.
아기 엄마 수미(가명) 씨가 아기를 돌보며 숨 가쁘게 짐을 싸며 아픈 시어머님을 챙기는 동안, 20대 초반의 젊은 아빠는 방 한편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평일과 주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온종일 오토바이를 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배달 노동자였습니다.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밤낮없이 도로 위를 달렸을 젊은 가장의 지친 몸과 무거운 책임감이 그 깊은 잠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가정을 지켜내는 버팀목이라 믿는 시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수미씨의 일상이 교차하는 공간. 우리는 이 작은 방에 반드시 쾌적한 안식처를 선물하겠노라 다짐하며 묵묵히 서랍을 빼고 짐을 싸고 보관이 가능한 공간으로 연신 날랐습니다.

장대비 속에서 치러낸 ‘짐 이동 대작전’
10년이나 묵은 살림살이를 그대로 둔 채 도배장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손길이 필요한 '대작전'이었습니다.
도배장판 시공 당일 아침, 하늘에서는 세찬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우선, 갈 곳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먼친척이 몇시간 쉴 수 있게 해주어 가족들과 강아지를 센터의 차량으로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것으로 시작!
성북주거복지센터 활동가 4명과 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분, 봉사자 한분, 그리고 정릉신협직원한분과 시공업체분까지... 모두 온몸이 땀과 빗물로 젖어가며 자재를 이고지고 날랐습니다. 공간이 좁아 짐을 한 번에 뺄 수도 없었습니다. 안방과 작은방의 시공을 위해 모든 가구와 물건을 비좁은 거실로 전부 빼냈다가, 방 도배가 끝나면 다시 그 거대한 짐더미를 방 안으로 몽땅 밀어 넣고 거실을 시공해야 했습니다.
한지협동조합의 베테랑 작업자들은 파인 바닥을 매끄럽게 보수했고, 아이와 할머니가 숨 쉴 벽에는 친환경 한지 벽지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발라나갔습니다. 천장에는 어두운 집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LED전등 교체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짐을 빼고, 옮기고, 다시 넣기를 반복하는 고된 중노동에 실무자들의 어깨가 무거워질 때쯤, 오후에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의 사연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준 종로주거복지센터 동료들과 사무국 정성현 활동가였습니다. 자신의 업무와 교육을 잠시 접어둔 채 빗속을 뚫고 와준 동료들이 합류하자 좁은 집안에 순식간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가구마다 묵은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닦아내며 예진이가 자라날 깨끗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도움의 손길로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몰입도로 주택 정리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손길로 탈바꿈한 깨끗한 공간
마지막 가구까지 완벽하게 제자리에 배치하고, 위험하게 엉켜 있던 전선들을 깔끔하게 배열했습니다. 남은 장판은 베란다까지 꼼꼼하게 깔아 한 뼘의 공간을 더 넓혀드렸습니다. 거뭇한 곰팡이와 먼지로 가득했던 벽은 보송보송하고 환한 새 옷을 입었습니다. 균일하지 못해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9개월 아이가 다칠까 염려되던 바닥은, 이제 아토피 걱정 없이 마음껏 걸음마를 연습할 수 있는 깨끗한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가 자라날 소중한 공간이 우리의 손길과 땀방울을 통해 새롭게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공사가 끝나고 환해진 집을 둘러보시던 무뚝뚝한 할머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으며 몇 번이나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그 투박한 진심 한마디에 하루 동안 쌓인 실무자들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집은 건강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사회적 관계가 이어지는 기반이고, 아이가 미래를 꿈꾸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가장 소중한 울타리입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함께 땀 흘려준 동료 활동가들의 뜨거운 연대, 그리고 정릉신협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이 집의 낡은 장판을 걷어내고 단단한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비록 당장 유아차와 여름옷을 마련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만큼 이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끈끈한 사랑과 사회의 따뜻한 연대가 이 집의 새 벽지처럼 이들을 든든하게 둘러싸고 있기에, 이 집에서 자라날 9개월 아이의 미래는 그 어떤 도심의 불빛보다 밝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의 손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아기에게는 쾌적한 숨결이, 아픈 할머니에게는 편안한 안식이 되었습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내일을 걱정하며 버티고 있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집이 안정되면, 삶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공 전> <시공 후>
성북주거복지센터 신찬미 사회복지사
